망포리 작은엄마와 탕수육

by 어슴푸레

29번 종점은 망포리. 말통골에서 시내 반대 방향으로 버스를 타고 가면 점점 지대가 높아졌다. 노면은 울퉁불퉁하고 길도 심하게 구불거려 의자 위 엉덩이는 남아나지 않았다. 멀미를 참으며 꼼짝없이 20여 분을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거짓말처럼 나타나던 버스 종점. 규율인 양 29번 버스는 먼저 온 버스의 뒤를 따라 둥그런 대열을 하고 멈춰 서 마지막 승객을 내려놓았다. 사람이 다 내린 걸 확인한 버스들은 차례차례 차고지로 들어갔다. 종점 근처로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래 봐야 슈퍼, 이발소, 보세 옷 가게, 양품점, 간이식당 정도였다.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종점은 늘 붐볐다. 줄 같은 건 서는 법이 없었고 버스 앞 유리나 옆면에서 번호를 확인한 후에야 일제히 발걸음을 떼거나 뛰었다. 나는 ‘궁말’, ‘안말’, ‘벌터’ 같은 전혀 가 본 적 없는 이름이 낯설기만 했다.


소영이가 내리자 버스는 뒤도 안 보고 차고지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두리번거렸다. 저기 문방구가 보였다. 왼쪽으로 틀어 조금 걸어 들어가면 작은엄마네가 나온다. 종점을 처음 온 소영이는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길을 잘 찾아야 할 텐데 뒤늦게 걱정이 밀려왔다. 역시! 길 찾는 데는 내가 선수다. 단번에 작은엄마의 세탁소를 찾았다. 맡기만 해도 깨끗해지는 것 같은, 세탁소 특유의 기름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유리문을 살피고 있자 작은엄마가 드르륵 옆으로 문을 밀고 나왔다.


"아유, 이게 누구야. 우리 선영이 아니야? 이 먼 데를 혼자 왔어? 밥은 먹었어?"

"아뇨. 제 친구랑요." 소영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엄마에게 인사했다.


소영이를 마주한 작은엄마의 표정이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특별한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선 똑같이 반겨 주셨던 거 같다. 작은엄마에겐 아들만 둘 있고 개구진 편이라 나를 참 예뻐하셨다. 나를 보는 눈빛이 늘 따뜻했다. 그래서 뚱뚱한 소영이까지 데리고 놀러 올 생각을 다 한 것일까. 입이 하나도 아니고 둘. 그것도 세탁 일로 한창 바쁠 토요일 점심에 밥도 안 먹고 나타난 불청객. 처음이어서였을까. 작은엄마는 친절히 대해 주셨다. 내가 소영이를 데리고 온 건, 사실 남자 형제만 있는 작은엄마네가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진수 오빠와 용수는 그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가 많았고, 용기를 내어 무리에 끼는 날이면 모르는 남자애들과 노는 게 영 어색했다. 세탁기에서 옷가지를 뺀 작은아빠가 우리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곧 들리는 군침 도는 한마디.

"선영이 짜장면 먹을래? 친구도 짜장면 좋아하지?"


조금 있으니 가겟방에서 밥 먹자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짜장면 먹을 생각에 신나서 방바닥에 앉았는데 어, 웬걸? 짜장면이 세 그릇밖에 안 된다. 작은아빠, 작은엄마, 진수 오빠, 용수, 나, 소영이. 사람이 6명인데 잉? 진짜 배고픈데. 한 그릇 다 먹고 싶은데. 낭패다. 작은아빠가 둥그렇고 흰 접시 위에 씌워진 비닐을 벗긴다. 뭔가 걸쭉한 게 가득하다. 별로 먹고 싶지 않게 생겼다. 나는 그 음식이 탕수육이라는 걸 몰랐다. 지금이야 '찍먹', '부먹'으로 취향껏 먹지만 그때 본 탕수육은 처음부터 '부먹'인 상태였다. 그래서 소스 속에 돼지고기튀김이 섞여 있다는 것도, 그 소스가 맛있다는 것도, 그 고기가 엄청나게 촉촉하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다. 의심쩍어 하며 한 점 입에 넣은 순간 열리던, 맛의 신세계. 와, 와아. 어쩜 맛이 이렇지.


소영이는 이미 먹어 본 눈치였다. 인당 개수가 맞지 않는 짜장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탕수육에만 매서운 젓가락 공격을 했다. 와. 정말 잘 먹는다. 에고. 좀 천천히 먹지.

아는 맛이 무섭다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탕수육보다 작은 대접에 조금씩 덜어진 짜장면이 더 좋았다. 탕수육은 몇 점 먹으니 좀 느끼했고, 촉촉했던 첫맛은 시간이 지나자 처음에 훨씬 못 미쳤다. 작은아빠는 친구, 참 잘 먹는다고만 하셨고 작은엄마는 아까 만났을 때보다 말수가 적어졌다. 나는 그제야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엄마네에서의 소영이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딱 여기까지다.


이후 몇 번 더 나는 '철'보다 '개념'이 없이 소영이를 데리고 작은엄마네 세탁소에 놀러 갔던 것 같다. 두어 번 더 탕수육을 얻어먹다가 말았다. 그게 심한 버스 멀미 때문이었는지, 야금야금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빼 버스비를 하다가 엄마한테 걸렸기 때문인지, "형님, 이제 선영이 그만 가게에 놀러 오게 하세요."라는 작은엄마의 말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특별히 이 일에 대해 엄마한테 혼난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선 '탕수육'에 대한 내 감흥이 별로여서였지 않나 싶다.


작은엄마는 그 이후로도 변함없이 나를 예뻐해 주셨다. 엄마 심부름으로 혼자 망포리에 왔다 돌아갈 때면 종점까지 같이 걸어 와 주셨고, 근처 양품점에서 마음에 드는 머리핀을 골라 보라고도 하셨다. 고민고민해서 머리핀을 집으면 작은엄마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쓸어 반묶음을 해 주셨다.


내 뒷머리에선 자줏빛 나비가 반짝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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