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출장을 가면 종종 손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 지갑을 분실하면 주인을 알 수 있도록 지갑에 명함 몇 장 넣고 다니기는 했지만 그건 전 직장 거였다. 저쪽 걸 받아 놓고 이쪽에서 안 주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주긴 줘야겠고. 주고 나면 "그 이메일 주소는 이제 안 써요, 핸드폰 번호는 같아요, 소속이 바뀌었어요." 구구절절 설명이 따라붙고. 그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이젠 정말 새 명함을 파야겠다 생각했다.
요즘 명함은 개인이 창작한 로고를 넣거나,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의 큐알 코드를 넣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였다. 나를 표현할 '한(one)' 문장을 두고 오래 고심했다. 사전을 빼고 말할 수 없으니 사전은 넣어야겠고, 현재 연구보다는 글쓰기에 푹 빠져 있으니 쓰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고. '사전'과 '글'의 위치를 두고 들었다 놨다, 문장 하나를 두고 둘로 나눴다 붙였다 하다 드디어 완성했다.
글을 쓰고 사전을 읽습니다.
언젠가 블로그 이웃이 '어슴푸레'가 익숙한 말이 아니라며 그 뜻과 닉네임인 이유를 물었다. 사전 뜻풀이를 몇 줄 붙였었는데 닉네임으로 쓰는 이유를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슴푸레'의 상태는 달빛, 불빛 등이 멀거나 약해 어둡고 희미하다. 나는 '어슴푸레' 하면 유독 새벽이 생각난다. 새벽녘, 새벽빛, 새벽별, 새벽달, 새벽길, 새벽어둠. 뚜렷하지 않고 어스름한, 선명하지 않고 가물거리는. 사물이 반쯤 자고 있고 반쯤은 깨어 있는 그 상태가 좋다. 조용히 불을 켜고 잊지 못할 기억과 잊을 수 없는 소리를 더듬어 쓰는 것이 좋다. 그렇게 동이 트고, 새들이 잠에서 깨어 지저귀고, 날이 완전히 밝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좋다. 내가 쓰는 글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