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정을 지나 소나무 숲을 걷고 있는데 새소리가 났다. 처음 듣는 울음소리였다. 와 딱따구리다! 남편이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어디 어디? 눈을 씻고 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저기 위에! 한참을 보자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이 살짝 도는 연둣빛 몸은 언뜻 봐선 나무껍질과 구분이 안 됐다. 익히 알던 딱따구리의 색깔이 아니었다. 내 의심을 날려 버리려는 듯 딱따구리는 나무에 부리를 대고 딱따따따 쪼기 시작했다. 그 새는 청딱따구리였다.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기 위해 부리로 나무를 쫄 때마다 물고기 비늘 같은 나무껍질이 후드득 떨어졌다. 딱따따따. 딱따따따. 그 모습이 안타까워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나왔다.
무슨 천벌을 받았길래. 골로 가는 충격은 어떻게 버티니.
부리로 나무를 쪼아 나무속에 둥지를 만드는 건 집념만으론 안 되는 일이었다.
시선을 거두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머리 위로 맑고 파란 하늘이 펼져져 있었다. 언덕의 네 갈래 길을 따라 숱이 풍성한 소나무들이 높디높게 서 있었다. 흡사 무리를 지은 식물성 기린이었다. 앞서 걷는 남편과 두 애를 멀찍이 바라보았다. 청량한 바람이 가슴 속으로 쉬지 않고 흘러들었다. 흠. 솔바람을 깊이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