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만드는 게 좋다. 오늘은 뭘 해 볼까. 냉장고 문을 연다. 눈으로 채소를 빠르게 스캔해 재료를 품에 안고 오른쪽 팔꿈치로 툭. 냉장고 문을 닫는다. 식재료를 식탁 위에 늘어놓고 장에서 냄비와 볼을 꺼낸다. 봉지에서 채소를 꺼내 다듬어 씻는다. 먹기 좋게 썰고 다진다. 가스불에 팬과 냄비를 올린다. 센불로 볶아 불을 내리고, 센불에 팔팔 끓여 찬물에 헹군다. 간을 하고 양념을 친다. 찬기와 접시에 음식을 소복이 담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귀찮은 일이다. 일정한 시간을 들여야만 결과가 나온다. 태울 때도 있고 설익힐 때도 있다. 짤 때도 있고 싱거울 때도 있다. 딱 맞게 맛있을 때도 물론 있다. 경험치가 쌓일수록 음식 맛이 좋아진다. 요령이 생기고 이건 이렇게 해야 가장 맛있지 절로 터득한다. 요리에도 연륜이 있다. 엄마와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을 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다.
왜 음식 하는 게 좋으냐고 누가 물었다. 잘하든 못하든 결과물이 나오니까요. 요리조차 성취 중심주의구나. 말하면서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음식 하는 게 좋다.
요리는 어딘가 수련을 닮아 있다.
각 단계가 있고 그 단계들을 마쳐야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먹을 사람을 고려해 만들지만, 그 과정에 푹 빠져 있는 건 만드는 사람이다. 칼날에 다치지 않게 왼손을 조금씩 뒤로 물리며 탁탁탁탁. 탁탁탁탁. 둥글게 엎드린 양파를 집중해 썬다. 그리하여 끝내 따뜻하고 정갈한 음식이 눈앞에 놓일 때 기쁨과 만족의 황홀경에 빠진다.
밥때도 아닌데 음식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때는 떡볶이를 하거나 빵을 굽는다. 가라앉은 기분이 올라오지 않을 때. 팍팍한 삶에 한 김 식힌 파운드케이크를 선물처럼 내놓고 싶을 때. 조건이 있기는 하다. 시간이 허락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남아 있어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