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학원은 80년대 후반부터 거의 붐이었다. 같은 반 여자애들 중에 절반 이상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사이에선 얼마나 오래 배웠는지가 피아노 연주 실력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너 피아노 칠 줄 알아? 하면 응 알아. 체르니 몇 번 치는데? 100번. 나보다 별로네. 난 50번 쳐. 그걸로 게임 끝이었다.
좀 산다는 집 애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어려서부터 양 손가락을 부지런히 놀리면 두뇌 발달에 좋다고 했다. 서울식당 윤경이는 일곱 살 때부터 현피아노를 다녔다. 소연이도 그랬다. 두 애의 집 거실엔 피아노가 있었다. 뚜껑을 덮고 앞쪽으로 반쯤 드리워진 피아노 커버는 흰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스르르 밀려와 힘없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윤경이는 의자 뚜껑을 열고 교본을 꺼내 피아노 커버 위에 올려 두었다.
뒤늦게 피아노를 배웠다. 열 살 때였다. 난생처음 피아노 건반을 누른 날이었다. 손가락 끝을 건반에 대고 누르는 건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손톱이 길어 건반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선생님은 내일 손톱을 자르고 오라고 했다. 음표 위에 1 2 1 2 1 3 1 5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1은 도, 5는 솔이었다. 손 모양 그림에는 엄지손가락에 1이, 새끼손가락에 5가 쓰여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그런대로 악보는 읽혔다. 20분이 지나 커튼이 열리고 선생님이 옆에 앉았다. 이번엔 왼손을 연습했다. 똑같이 음표 위에 1 2 1 2 1 3 1 5의 숫자가 적혀 있었다. 오른손처럼 치는데 소리가 이상했다. 왼손은 엄지손가락이 5고, 새끼손가락이 1이라고 했다. 1 2 3 4 5/5 4 3 2 1을 양손으로 같이 치는데 왼손의 1을 자꾸만 5로 쳤다. 다시! 다시! 다시! 칠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엄지는 무조건 1이 아니었다. 알고 있던 게 크게 흔들렸다. 능숙히 치는 데는 몇 주가 흘렀다.
선생님은 집에서 꾸준히 연습하라고 했다. 오른손 50번, 왼손 50번씩 건반 연습을 해 오라고 했다. 집에는 피아노가 없었다. 스케치북에 건반을 그렸다. 양손이 올라갈 건반을 그리기엔 스케치북이 턱없이 짧았다. 한 손씩 연습했다. 아무리 연습해도 익혀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피아노의 타건감과 너무 달랐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재미가 없었다. 10번쯤 반복하고 다음 날 학원에 갔다. 연습 안 했지? 매일 혼났다. 따님은 손가락이 길어서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잘 칠 텐데 너무 아쉬워요. 엄마는 피아노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따라 했다. 다 게을러서 그래. 길쭉하니 게으른 손이야. 게으르단 말이 듣기 싫었다. 다음 날도 똑같았다. 손가락 모양 둥글게 안 하니? 손등에 달걀 올려 놨다고 생각하고 얌전히! 누가 손가락을 쫙 펴고 치니? 일주일에 세 번. 1년 반을 겨우 다녔다.
난 늦게 배웠지만 잘 쳐서 진도가 빠르데. 넌 어디 쳐? 아직도 바이엘 하야? 나보다 겨우 두 달 빨리 학원에 다닌 충북통닭 인선이는 매일같이 자랑했다. 처음 콩쿠르에 나간다고 했다. 엄마가 주황색 꽃이 달린 검은 벨벳 원피스도 사 줬다고 했다. 그리고 3학년이 끝나 가는 초겨울에 정말로 수상을 했다. 체르니 100번에 들어간 직후였다.
전자 앞 여자아이들 사이에선 윤경이가 피아노를 제일 잘 쳤다. 먼저 익힌 3년이란 시간은 쉬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도레도레도레도를 이제 막 뗐을 때 윤경이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쳤다. 매번 절망했다. 친척 예식에서 결혼 행진곡을 쳤다더라. 지난 콩쿠르에서도 대상을 받았다더라. 이번 콩쿠르에서는 소연이와 연탄곡을 쳐서 최우수상을 탔다더라. 동부교회의 성가대 반주자로 뽑혔다더라. 수많은 '카더라' 앞에서 점점 흥미를 잃었다. 어떻게 해도 윤경이를 앞설 순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피아노가 생겼다. 그만 다닐래요. 재미없어요. 어려워요.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아버지는 태일이 삼촌의 누나한테서 까만 한일피아노를 중고로 샀다. 피아노 학원에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안방에 나를 데리고 들어가 "짜잔!" 했다. 꿈같지만 당황스러웠다.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기가 어려웠다.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돈 70만 원이라고 했다. 한 달은 열심히 쳤다. 피아노 학원에 가기 30분 전에 겨우. 피아노까지 생긴 마당에 연습 안 한다고 혼나기는 싫었다. 언젠가부터 악보엔 샤프와 플랫이 수두룩했다. 아농과 소나티네와 체르니 100번을 새로 받아 달력으로 하얗게 싸서 피아노 의자 속에 넣었다.
금색의 페달 세 개를 번갈아 누르면 소리가 훨씬 좋았다. 울리기도 하고 화음이 들어가기도 했다. 페달이 니은 자로 쓰윽 들어갈 때마다 상체가 같이 흔들렸다. 피아노 학원을 가려고 대문을 나서는데 골목에서 비석치기를 하던 준석이가 그랬다. 너 피아노 잘 치더라. 처음 듣는 칭찬이었다. 그러나 4학년이 끝나 가는 초겨울에 피아노 학원을 끊었다. 콩쿠르는 한 번도 나가지 못했고 체르니 100번의 10번 안쪽을 치다 끝났다. 태일이 삼촌의 누나에게 가끔 배우러 가기도 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피아노 뚜껑엔 먼지가 더께로 앉았다.
딱 한 번 피아노를 다시 쳐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중학교 때였다. 교내 합창 대회의 학급별 반주자가 되고 싶은 아이들은 한 명씩 나와 음악실 피아노를 쳤다. 마치 짠 것처럼 모두들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했다. 조용히 시작된 선율은 점점 격정적이 되다가 끝없이 위 옥타브로 올라가다 아래로 내려왔다. 아름다웠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윤기가 1등을 했고 2학년 6반의 반주자가 됐다. 미정이는 지휘자가 됐다. 우리 반은 합창 대회에서 2등을 했다.
체르니 50번을 친다는 말은 피아노를 최소 5년은 쳤다는 얘기였다. 들인 시간은 실력에 묻어 났다. 그 당연함에 나는 늘 기가 질렸다. 재능도 없었지만 꾸준함이라는 재능은 더더욱 없었다. 그저 윤경이와 소연이와 인선이와 윤기는 넘사벽일 뿐이었다.
#그시절#피아노#80년대국민학생#중산층#시간#실력#콩쿠르#절망#꾸준함#재능#넘사벽#유년#수원#삼성전자#음악#체르니#영복여중#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