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오뚜기목욕탕

by 어슴푸레

그 시절 전자 앞에는 목욕탕이 하나밖에 없었다. 오뚜기슈퍼에서 왼쪽으로 돌면 골목 안쪽에 오뚜기목욕탕이 있었다. 입구에는 비스듬한 하양 빨강 파랑 띠가 길쭉한 원통 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목욕탕 안에 이발소가 있음을 알리는 표시등이었다. 아버지는 명절을 앞두고 그곳에서 목욕과 이발을 같이 했다.


일요일, 점심을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엄마가 목욕탕 갈 채비를 했다. 사각의 구멍이 뚫린 사각의 빨간 바구니엔 까맣고 가는 줄무늬가 그려진 정사각 다홍 때 타월을 제일 먼저 챙겼다. 그런 다음에야 초록색 차밍 샴푸와 크림색 드봉 린스를 얌전히 넣고 속옷과 양말을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한쪽에 두었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게 수건으로 바구니를 덮으면 준비 끝! 목욕탕 안에선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온탕에 들어가 때를 불리고, 나와서 때를 벗기고, 머리를 감고, 사우나를 들락거려도 한 시간이 겨우 지나 있을 뿐이었다. 뜨거운 열기에 잠이 왔지만 너무 시끄러웠다. 때 타월이 아프다고 우는 아이, 등을 때리며 가만 좀 있으라는 엄마. 냉탕에서 수영하는 아이들. 탕 속에서 수다 떠는 아줌마들. 목욕탕 안은 늘 웅웅거렸다. 눈을 크게 뜨고 입 모양을 봐야 무슨 말인지 겨우 알아들었다. 두 손에 모터 단 듯 24시간 부지런 딴딴 엄마는 목욕탕만 오면 느긋했다. 오래 탕에 앉아 있었고, 오래 때를 밀었고, 오래 사우나를 했다. 우리는 두 시쯤 표를 사서 들어가 여섯 시가 다 되어 나왔다. 매번 물에 불어 쪼골쪼골해진 손끝은 살구씨처럼 불거졌다. 오돌토돌한 손가락을 문지르고 있으면 엄마가 요구르트를 사 줬다. 쪼오옥. 빨대로 길게 한 번 빨면 차고 단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좋았다. 탕에서 나온 엄마는 말끔하고 윤이 났다. 젊고 예뻤다. 물은 참 좋은 거구나 어린 맘에도 생각했다.


살림이 피면서 목욕 바구니에 넣는 것도 하나둘 늘었다. 어느 날엔 학교에서 안 먹고 집에 가져온, 기한 지난 해태우유가. 또 어떤 날은 좋은 소금이라며 서울 큰이모가 선물한 죽염이 담겼다. 비싸서 세신사에게 마사지를 받을 순 없어도 챙겨 간 것들을 몸에 바를 순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우나 유리문엔 '우유, 오일, 요플레, 소금 반입 불가'가 나붙었다. 그 무렵 사람들도 우리처럼 조금씩 잘살게 되었을까.


몸이 크고 사춘기가 되면서 목욕 바구니를 더는 들지 않았다. 사각 구멍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간 바구니를 들고 집에 오다 보면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났다. 멀리서도 목욕 갔다 오는구나 내게 알은체를 했다. 양품점은 점점 장사가 잘됐고 엄마는 가게를 비울 수 없었다. 목욕탕은 나 혼자 가야 했다. 그러면서 목욕 가방을 바꿨다. 아버지가 들고 다니던 까만 직사각 세면 가방이었다. 새로 생긴 당구장에서 개업 선물로 돌린 거라고 했다. 앞과 등에 각각 지퍼가 있고 사방이 막혀 내용물이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속옷과 양말을 까만 비닐봉지에 따로 담지 않아도 되었다. 앞 지퍼를 열고 그 속에 넣었다. 추석 선물로 들어온 휴대용 샴푸, 린스, 보디 워시를 등 지퍼를 열고 담았다. 마지막으로 약병 모양의 미니 샤워 코롱을 넘고 지퍼를 잠갔다. 제법 어른이 된 것 같았다.


그 후로 엄마의 목욕탕 가는 날은 잘 없었다. 그만큼 엄마는 바빠졌다. 다르게 말하면 목욕보다 돈 버는 게 엄마에게 이득이란 뜻이었다.


엄마가 엄마를 위해 외출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게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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