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슐리퀸즈에서 동양부페가 생각났다

by 어슴푸레
일요일에 우리 식구 동양부페 갔다 왔다?


동양부페(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동양뷔페'가 맞지만 당시의 고유명 표기 관용에 따라 '동양부페'로 적음)는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있었다. 아주대 삼거리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상가 건물이 마주 보였다. 2층의 부채꼴 모양 대형 유리에 '동양부페' 네 글자가 정자로 쓰여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예식 후 베풀어지는 뷔페식 연회 말고, 순수하게 외식을 하러 그곳에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980년대 중후반. 아이들 사이에서 "부페 먹으러 간다", "부페 갔다 왔다", "부페 가서 갈비랑 아이스크림 먹었다"라는 말은 일종의 무용담이었다. 경험하지 못한 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종류별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어 먹고 싶은 걸 여러 번 갖다 먹어도 아무도 뭐라 안 한다는 말이 거짓말 같았다. 테이블보와 의자 커버가 온통 하얗고 자리마다 네모난 종이가 깔려 있다는 말은 영화 얘기였다. 소연이네 집에 세 들어 사는 소영이네도 동양부페에 갔다 왔다고 했다. 케이크와 쿠키와 젤리가 가득하다고 했다. 궁금했지만 엄마에게 우리 집도 가 보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은하슈퍼에 가서 두부 한 모랑 콩나물 200원어치 주세요 부식 심부름을 했으므로.


그로부터 10년쯤 지나 동양부페에 갔다. 고 2 여름. 외할아버지의 칠순 잔치를 거기서 했다. 서울에서 큰이모와 작은이모네가 내려왔고, 큰외숙네와 우리 식구. 작은아버지네가 자리를 함께했다. 곱게 한복을 입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점잖게 웃으셨다. 노래방 기계 앞에서 어른들이 돌아가며 축가를 불렀다. 홀마다 우리 같은 대가족이 비슷한 순서로 연회를 즐겼다. 3단 케이크에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의 불을 끄고, 1대, 2대, 3대가 나와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소감을 말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누구 하나 크게 못살지 않았고, 가정을 이뤄 둘 이상의 아이를 거느렸다. 그랜저와 갤로퍼와 엘란트라와 르망과 악센트가 동양부페 주차장에 도착한 순서대로 주차됐다 하나둘 출차했다.


그러고 다시 10년이 흘러 동양부페에 갔다. 첫 조카 원준이의 돌잔치가 거기서 있었다. 은색과 파란색으로 장식된 풍선이 홀 입구부터 실내를 가득 메웠다. 주인공이 입장해 통과하는 문에는 파란 돌고래 풍선이 아치형으로 엮여 반짝거렸다. 한복을 차려입은 언니와 오빠는 수줍고 쑥스러운 미소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돌잡이 한복이 어색한 원준이는 손으로 자꾸 금박의 검은 복건을 잡아당겼다. 다복하십니다. 사진사가 플래시를 쉬지 않고 터트리며 말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흐뭇한 얼굴로 첫 손주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홀마다 우리 같은 대가족이 비슷한 순서로 잔치를 즐겼다. 3단 케이크에 초를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초의 불을 끄고, 3대, 2대, 1대가 나와 차례로 사진을 찍었다. 소감을 말하고, 영상을 감상하고,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큰이모네와 작은이모네, 큰외숙네와 작은아버지네. 사돈어른네가 자리를 함께했다. 오빠와 언니의 학교 선생님들과 대학 친구들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후로 동양부페를 가는 일은 없었다. 뷔페 음식점에서 잔치를 하는 유행은 식었고 빕스 같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룸을 빌리거나 호텔에서 소규모 가족 행사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수십 년간 아주대 삼거리 앞에 성처럼 서 있던 동양부페가 언제 문을 닫았는지 알지 못한다. 뷔페 음식점이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도 못 했던 그 꼬마는 어느새 마흔 중반을 넘겼다. 부페가 뷔페의 오표기이며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라는 것쯤은 알아도 세상엔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자식들에게서 칠순 축하를 받던 외할아버지는 더 이상 계시지 않고, 세상에 태어나 첫돌을 맞았던 원준이는 스무 살이 훨씬 넘었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때의 가난 냄새기도 하고. 그때의 성공 냄새기도 하고. 그때의 행복 냄새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눈앞에 없지만 이름으로. 연도로. 음악으로. 홀연히 되살아온다.


애슐리퀸즈에서 동양부페가 생각났다.
이어서
외할아버지가.
외할머니가.
엄마가.
아버지가.
그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한 줄 요약: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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