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을 캐며 철이 들었다

by 어슴푸레

전자 앞 달천운수 근방엔 긴 하천이 있었다. 생활 하수로 청록색을 띠었고 개구리알보다 큰 방울이 이따금씩 터졌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났고 초록 머리카락 같은 해캄이 군데군데 돌들을 빙 둘러 감쌌다. 하천의 양옆으로 비탈진 좁은 둑이 끝없이 이어졌다. 장마가 지면 하천이 넘쳐 동네엔 물난리가 났다. 칠월,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동네 아저씨들은 쌀 포대에 흙을 담아 하천둑에 쌓았다. 정말로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양복점 문 앞 단차로 빗물이 강물처럼 흘렀다. 슬리퍼가 쓸려 내려가지 않게 열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있으면 아버지는 가게로 들어찬 물을 양동이로 쉬지 않고 퍼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될 즈음 그 하천에 복개 공사가 이뤄졌다. 몇 달에 걸쳐 엄청난 양의 흙이 하천에 쏟아졌고 골목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으면 포클레인이 심심찮게 지나갔다. 여름엔 피라미를 잡고 겨울엔 얼음 썰매를 타던 그곳엔 울퉁불퉁 시멘트 보도가 깔렸다. 하천이 덮이고 썩은 내가 더는 안 났던가. 이후 동네 아저씨들은 더 이상 장마나 태풍이 올 때마다 티브이에 눈을 주며 대책 회의를 하지 않았다.


봄이면 동순이와 쑥을 캐러 하천둑에 갔다. 뒤쪽에 반달 모양의 홈이 파인 검은색 도루코 칼을 비닐봉지에 담고 한 발씩 번갈아 뛰며 자리를 살폈다. 둑의 양지바른 곳에 쪼그리고 앉아 쑥을 뜯었다. 쑥 뿌리가 흙 속에 깊이 박혀 억셌다. 그러면 봉지에서 칼을 꺼냈다. 은색의 칼등을 잡고 왼쪽으로 잡아당기면 플라스틱 직사각 칼집에서 칼날이 하품하듯 입을 벌렸다. 칼날을 수평으로 펴서 칼등을 잡고 쑥 뿌리와 줄기 사이에 대고 누르면 쑥대가 깔끔하게 잘렸다. 흰 솜털이 수줍게 난 쑥의 뒤 잎은 보송보송하고 연했다. 이십여 분을 꼬박 앉아 쑥을 캐면 허리가 쑤셨다. 3월의 바람은 찼고 하천의 냄새는 고약했다.


한 봉지 소담히 쑥을 캐 오면 엄마는 씻어서 쑥국을 끓였다. 구수한 된장과 쌉싸름한 쑥이 잘 어울렸다. 운이 좋으면 국에 바지락이 들어 있기도 했다. 엄마는 가끔 쑥전을 부치기도 했다. 기름을 둘러 지지면 쑥색이 반짝 빛나다 점점 어둡게 시들었다. 조금 눋게 부쳐진 쑥전은 향긋하고 쫀득했다.


밖에서 놀다 갑자기 쑥을 캐기도 했다. 네다섯 시쯤 되면 헤어지기 아쉬워 누구라 할 것 없이 우리 쑥 캐러 갈래 했다. 집에 가서 칼을 챙겨 오기는 귀찮았다. 그럴 땐 손으로 뜯었다. 억센 뿌리는 돌려 손톱으로 끊었다. 짙은 물이 손톱에 때처럼 끼었다. 며칠이 지나야 그 물이 빠졌다. 쑥만 캔 건 아니었다. 진흙 밭에서 냉이를, 둑 아래에서 돌미나리를 뜯었다. 그 더러운 하천에 미나리가 지천이었다. 갈색으로 쪼끄라든 잎을 떼고 연하고 작은 잎이 있는 줄기만을 골라 손목만 한 길이로 두어 줌 끊었다. 엄마는 씻어서 식초와 고추장을 넣고 무치기도 했고, 삶아서 된장으로 무치기도 했다. 어느 날엔 엄마를 따라 민들레잎을 캐기도 했다.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상추 대신 돼지고기와 같이 싸 먹었다. 쌉싸래한 맛이 침과 함께 입안 가득 고였다.


다 썩은 물에서 뭔가 자라는 것이
매번 놀라웠다.
불쾌한 냄새 따윈 아랑곳 않고
꿋꿋이 뿌리내리는 것이 매 봄 신기했다.


돌미나리와 민들레와 냉이와 쑥을 봉지 가득 캘 때마다 조금씩 더 철이 들었다.


한 줄 요약: 봄은 무던하고 근면히 살 것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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