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박은 절대 안 돼

by 어슴푸레

"아빠. 저 오늘 동순이네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뭐? 안 돼. 여자애가 겁도 없이 어디 남의 집에서 잔다고 그래?"

"내일 일요일인데 여기서 자고 일찍 갈게요."

"당장 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

철컥.


국민학교 2학년 여름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에 가지 않고 동순이네 집에 같이 갔다. 동순이네는 엄마 아빠가 모두 돈을 벌러 나가서 집에 어른이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마루가 바로 보였다. 빨간색 쓰리세븐 책가방을 마루에 벗어 놓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면 맞은편 방에서 동화가 나와 누나 안녕? 했다. 동순이는 댓돌에 놓인 앞이 막힌 보라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내려가 왼쪽 미닫이를 열고 부엌에 갔다. 쪼르르 동순이를 따라가면 동화도 내 뒤를 쪼르르 따라왔다.


딸깍. 형광등 옆으로 길게 드리운 줄에 까만 달걀 모양의 스위치가 대롱거렸다. 톡 튀어나온 하늘색 꼭지를 꾹 누르면 부엌이 환해졌다. 주황 비닐 호스가 연결된 수도꼭지 아래로 네모난 개수대가 있었고 그 왼쪽으로 그릇을 엎어 놓는 식기 건조대. 더 왼쪽으로 뒤집힌 기역 자 모양으로 꺾인 구석엔 밥상과 계란판을 올려 두는 타일 상판. 더 더 왼쪽으로 2구짜리 빨강 린나이 가스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벽은 정사각 흰 타일이, 개수대부터 가스레인지가 있는 상판은 흰색과 회색의 직사각과 정사각 작은 타일이 테트리스 모양으로 빈틈없이 박혀 있었다. 동순이는 벽에 걸린 까만 프라이팬을 빼서 화구에 올리고 왼쪽으로 손잡이를 돌려 가스 불을 켰다. 허리를 숙여 나무 미닫이 하부장을 열어 식용유와 맛소금을 꺼냈다. 기름을 두르고 계란 여섯 개를 깨서 프라이를 했다. 아홉 살이라고는 볼 수 없게 너무나 능숙했다. 꽃무늬가 그려진 동그란 밥통에서 밥을 푸고 냉장고에서 버터를 떠서 밥공기에 한 숟갈씩 올렸다. 반숙의 프라이를 두 개씩 올리고 간장을 쪼륵 따랐다. 상에 밥과 숟가락을 올려 마루로 옮겼다. 동화와 내가 뒤따라 상 앞에 앉으면 쓱쓱 비비는 시범을 보였다. 따뜻한 밥에 버터와 계란프리이와 간장이 섞인 맛은 환상이었다. 밥을 다 먹으면 긴 마호병의 머리를 꾹 눌러 보리차를 밥공기에 받아 마셨다. 오전반이 끝나면 동순이네서 점심 먹을 생각에 하교 시간만 기다려졌다.


동순이는 나와 형제 관계가 같았다. 오빠. 동순이. 남동생. 깍두기 여동생이서일까. 내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다. 속이 깊으면서도 발랄했다.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를 잘했고 얼굴이 희었고 눈이 컸고 속눈썹이 길고 풍성했다. 어떻게 보면 마론 인형 같기도 했다. 갈색의 머리칼에 몸이 마르고 길쭉했다. 동순이네는 신기한 물건이 많았다. 꼬부랑 글씨가 적힌 얇고 둥글둥글한 크레용도 있었고, 푹푹 퍼도 속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아이보리색 플라스틱통에 버터가 가득했다. 장난감과 색칠공부가 많았다. 동순이네 뒤뜰로 작은 동산이 있었다. 스케치북과 색칠공부. 크레용을 가져가 언덕 풀밭에 돗자리를 깔고 그림을 그렸다. 나는 그림을 못 그렸지만 동순이는 화가 같았다. 그 애가 그린 그림은 색칠공부에 그려진 공주보다 예뻤다. 나는 동순이의 그림에 색칠을 하며 놀았다. 그 언덕 풀숲에서 까마중을 먹었다. 이건 까마중이야. 달고 셔. 티셔츠를 잡아당겨 바구니처럼 만들면 동순이는 까마중을 손가락으로 훑듯이 땄다. 후 먼지를 불고 한 움큼씩 먹었다. 블루베리와 맛이 비슷했지만 달고 신 정도는 블루베리의 1/5 정도였다.


동순이의 형부는 미군이랬다. 그 집의 물건들은 대부분 형부와 이모가 선물한 것들이라고 했다. 동순이는 버터를 꼭 '빠다'라고 했다. 우리 집에 가서 빠다에 밥 비벼 먹을래? 나중엔 그 말을 하지 않아도 으레 동순이네 집에 가서 놀았다.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고 엄마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어 달을 같이 놀다 보니 점점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어느 날은 저녁 먹을 때가 다 돼서 돌아갔고 또 어떤 날은 동순이네 엄마 아빠 오빠 동화와 함께 여섯이서 같이 저녁을 먹기도 했다. 동수 오빠는 말이 없었고 동화는 애교가 많았다. 동순이는 숨소리가 큰 편이었다. 비염이 있었던 것 같다.


토요일 밤. 저녁까지 먹고 여덟 시가 넘어갔을 때였다. 자고 가. 동순이가 그랬다. 어? 안 돼. 아빠가 허락 안 해 주실 거야. 윤경이네서도 한 번도 못 잤는걸. 전화해 봐. 내일 일요일이잖아. 장사하느라 바쁘시다며. 허락해 주실지도 모르잖아. 그럴까? 나는 동순이에게서 10원짜리 두 장을 빌려 한일냉장 아래쪽에 있는 공중전화 박스에 갔다. 동순이가 같이 가 줬다. 예상한 대로 아버지는 허락을 하지 않으셨고 몹시 화난 목소리로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집에 가도 혼날 건 뻔했고 집에 안 가고 여기서 자도 아빠는 이 집을 모르니 자도 될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전화를 끊어 버렸고 심장이 떨렸지만 동순이랑 노느라 금방 잊었다. 그리고 9시가 좀 넘었을 때 안방에 자리를 펴고 동순이와 누웠다. 한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계십니까?"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알고 여길 오셨는지. 이렇게까지 하셔야 하는지. 원망이 지나가고 찾아온 건 걱정이었다. 죽었다. 아. 맞을지도 몰라. 어떡하지. 아. 아 집에 가기 싫다. 그대로 얼어서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동순이네 가족에게 인사를 하고 앞서가는 아버지를 따라 눈물을 쏟으며 걸었다. 아버지는 별 말씀을 안 했다. 혼내고 매를 때리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였을까. 아버지는 들어가 자라고만 했다. 다음 날 아침. 또 그러면 죽도록 맞는다고 했다. 늘 궁금했다. 어떻게 거기를 찾아왔는지. 주소도 모르고 어디쯤에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동순이네서 놀다 올게요. 그 말만 했을 뿐인데. 어떻게 동순이네 집을 그 밤에 찾아오신 건지.


수십 년이 지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그때 아버지. 동순이네 어떻게 오신 거예요? 말도 마라. 그 집 찾는다고 밤에 그 엄마 아빠 다니는 회사 사람들 수소문해서 한 시간도 넘게 찾았다는 거 아니니. 어디 쪼그만 게 외박이냐고. 노발대발해 가지고는. 혹시나 나쁜 물 들까 봐. 무슨 일 생길까 봐. 네 아빠 눈이 뻘게서 일하다 말고 너 찾으러 간 거 아니니. 에휴. 그러게. 왜 그렇게 속을 썩였냐. 아버지가 널 얼마나 아끼셨는데.


이후 주황색 공중전화만 보면 아버지 생각이 나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간도 크게 전화를 뚝 끊고 동순이네서 자겠다고 혼자 결정해 버린 그때의 내가 맹랑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나는 쭉 동순이네서 놀았다. 학교 교문 아래서 산 병아리가 죽지 않고 닭이 돼 가는 걸 보는 게 좋았다. 동순이는 살뜰한 아이였다. 나는 여름방학이면 아침만 먹고 그 집에 가서 저녁 먹기 전까지 놀았다. 고무줄을 뛰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고. 땅에 동그라미를 그려 '돈! 가스'를 하며 뛰고 피하고 또 뛰었다. 일이삼사 사방치기를 하고 넓적한 돌을 구해 비석치기를 했다. 색칠공부를 하고 공주를 그리고 오려 종이 인형 놀이를 했다. 잠자리를 잡았다 놓아주었고 빨간 벽돌과 봉숭아잎을 짓찧어 소꿉장난을 했다. <천사 소녀 새롬이>와 <우주의 여왕 쉬라>와 <꽃나라 요술봉>을 챙겨 보았고, 나뭇가지를 구해 주인공처럼 예쁘고 힘 있고 멋지게 변신하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동순이랑 있으면 뭔가 동화 속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미제' 물건이라는 것도 그랬고, 그 애가 내게 알려 주는 것들은 늘 새로웠다. 200원짜리 짜파게티를 사서 끓여 줄 때는 내 찐 베프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4학년 때 딱 한 번 빼고 졸업할 때까지 더는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서로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았고 그애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갔다. 대학 진학 후 너무 궁금해서 국민학교 앨범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놀랍게도 같은 번호를 쓰고 있었다. 삼성3차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원천리천 산책로에서 만나 한참을 이야기했다. 서울로 시집오기 전까지 몇 번 더 만났다. 방문 미술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술을 잘 마시고 여행을 좋아했다. 역시나 노래를 잘했고 속눈썹이 길었고 얼굴이 희었고 몸이 길었다.


마지막으로 동순이를 본 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2006년 봄이었다. 같이 여행 카페에 가입해 관광버스를 타고 마이산 탑사에 갔다. 돌탑에 돌을 올리며 소원을 빌고 사진을 찍고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동순이는 하와이에 갈 거라고 했다. 형부와 이모가 있는 곳에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리고 연락이 끊겼다. 엄마 같고 언니 같던 내 친구 양동순. 그 개량 한옥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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