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탄아파트를 아시나요

by 어슴푸레

동생이 태어나고 아파트에 처음 살았다. 지금은 사라진 구매탄아파트였다. 후문에는 회색 전봇대 뒤로 크지 않은 재래시장이 있었다. 그 구매탄시장에 자주 엄마와 장을 보러 갔다. 양손에 봉지 봉지인 엄마는 꼭 내게 계란을 들라고 했다. 요즘처럼 계란판을 끈으로 묶어 팔지 않았다. 흰 비닐봉지에 계란 서른 개를 한 알씩 조심조심 담아 주면 서로 부딪치지 않게, 깨지지 않게 들고 집까지 가야 했다. 여섯 살 어린아이에게는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두 손으로 엉거주춤 봉지를 들고 가다 꼭 넘어졌다.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봉지 안에서 열 개 정도만이 멀쩡했다. 깨진 계란 껍질과 노른자가 둥둥 떠다니는 봉지를 가까스로 잡고 있으면 엄마는 뒤에서 또또. 내가 못 살아. 그걸 하나 못 들고. 지청구가 들렸다. 어느 날엔 일부러 길바닥에 계란을 퐁퐁 깨며 장난을 쳤다고 했다. 그런 적은 없었다. 엄마와 나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뒤쪽 공터에 일주일에 한 번씩 50대의 아저씨가 플라스틱 말을 여섯 마리나 끌고 왔다. 리어카 바퀴를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길게 쇠막대를 연결해 칸을 나눈 기다란 마차였다. 천장에는 햇빛을 가릴 수 있게 주황 천막을 씌웠다. 수직의 쇠기둥에 칸마다 플라스틱 흑마와 백마가 번갈아 스프링에 매달려 있었다. 한 번 타는 데 얼마였을까. 타고 싶어 한참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 날은 엄마가 태워 줬고, 어느 날은 그냥 집에 가자 했다. 손님이 전혀 없는 날엔 아저씨가 공짜로 태워 주기도 했다. 그러면 하나둘 다른 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고 말을 타러 왔다. 말 머리를 양쪽으로 지른 손잡이를 두 손으로 꼭 잡아도 위아래로 말이 되똥되똥 흔들렸다. 마차에 달린 까맣고 네모난 스피커에서 동요가 쉴 새 없이 흘러 나왔다. 노래 다섯 곡이 끝나면 아저씨는 말을 멈췄다. 아저씨 기분이 좋거나 손님이 없는 날은 일곱 곡이 끝나도 계속 태워 주웠다. 오래 타면 울렁거렸다. 마차 앞에는 타고 싶어서 구경하는 아이들과 다 탈 때까지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나뉘어 서 있었다. 어느 날은 구경하는 아이들 틈에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엄마가 유일하게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날이 있었다. 그날은 집에 쥬단학화장품 방문 판매 아줌마가 오는 날이었다. 그분도 주기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돌았다. 바둘기색 블라우스에 남색 바지를 입은 아줌마는 네모난 남색 가방을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가방에는 별거 별거가 많았다. 쥬단학 아줌마는 반짝이는 주홍 직사각 상자와 은색 직사각 상자를 가방에서 꺼내 방바닥에 가지런히 놓았다. 다음으로 안경닦이 재질의 앞이 터진 옅은 회색 주머니에 싸인 네모난 콤팩트를 가만히 놓았다. 마지막으로 반짝거리는 매니큐어를 서너 병 늘어놓았다. 아줌마가 길쭉하게 파인 상아색 손잡이를 쥐고 살살 돌리면 진달래색 매니큐어가 까만 붓에 묻어 나왔다. 금색 뚜껑을 돌리면 복숭아색 스킨과 흰색 로션병에서 은은하고 시원한 향이 났다. 콤팩트 측면 가운데의 네모난 버튼 두 개를 비틀면 베이지색 분이 분첩과 함께 새초롬히 얼굴을 보였다. 네모난 거울에 콤팩트를 바라보는 엄마가 비쳤다.


스킨하고 로션만 할게요. 아기 엄마. 왜애. 하는 김에 콤팩트도 하지 왜? 돈이 이거밖에 안 돼요. 엄마는 갈색 반지갑에서 지폐를 두어 장 꺼내 아줌마에게 건넸다. 엄마는 화장품을 아껴 발랐다. 집에선 장미 무늬가 크게 그려진 밤색 홈웨어를 주로 입었다. 광택으로 반짝였고 양옆에 긴 띠가 달려 있어 뒤로 양손을 움직여 리본을 묶는 롱 원피스였다. 엄마는 커트 머리에 뽀글뽀글 파마를 했다. 아버지는 엄마가 짧은 머리에 파마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지만 엄마는 관리하기 힘들다며 늘 그 머리를 했다. 같은 이유로 나도 늘 단발머리였다. 엄마의 미모가 머리 때문에 다 가려진다고 생각했다.


여섯 살 때쯤 엄마는 방 두 개 중 작은방에 월세를 주었다. 그 방에 간호사 언니가 세를 들었다. 얼굴은 생각나지 않지만 친절하고 상냥했다. 엄마는 늘 바쁘고 동생을 챙기느라 나는 뒷전이었다. 언니도 여동생도 없는 나는 그 언니가 그렇게 좋았다. 퇴근하고 와서 힘들 텐데도 내가 언니이. 하고 부르면 응. 하고 문을 열어 줬다. 나는 동화책과 소꿉장난 세트를 들고 작은방에 갔다. 그러면 언니는 무릎에 나를 앉히고 책을 읽어 주었다. '엄마잡기'를 하자고 하면 언니는 그 말이 우스운지 웃었다. 엄마를 왜 잡아 하면 술래잡기니까 엄마잡기지 했다. 언니는 말도 잘하네 했다. 아홉 시 뉴스가 할 때까지 언니랑 놀고 있으면 엄마가 그만 나오라고 했다. 어느 날 밤 엄마와 아버지가 크게 다퉜다. 간호사를 더 따라 문제라고. 제 엄마보다 어떻게 더 따르냐고 했다. 아버지는 별것도 아닌 걸로 피곤하게 한다고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그 일로 많이 다퉜다. 그래도 난 언니 방에 가서 놀았다. 그리고 몇 달이 안 돼 언니는 방을 뺐다. 왜 이사를 갔는지는 모른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는 것이 서럽고 허전했다.


엄마가 영동시장으로 양복감을 끊으러 가거나 은행을 간 사이, 엄마 몰래 아버지가 있는 전자 앞에 갔다. 여섯 살이 걸어가기엔 꽤 멀었다. 흙길과 자갈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원천리천을 따라 삼성전자 기숙사 쪽으로 걷고 걸었다. 아빠아! 하고 양복점 유리문을 열면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잊을 만하면 양복점에 갔다. 으이그. 엄마 걱정하면 어쩌려고 왔냐. 그러시기만 했다. 아버지는 양복 재단대에서 컵라면을 막 드시려던 참이었다. 하얗고 길쭉한 스티로폼 컵에 빨간 종이 뚜껑이 펄렁거렸다. 뭐라고 두 글자가 쓰여 있었는데 한글을 몰라 읽지 못했다. 와아. 맛있겠다! 아버지는 나무젓가락을 쪼개 면발을 들고 후후 불어 내 입에 넣어 주었다. 아버지는 국물에 찬밥을 말아 드셨다. 자투리 옷본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놀고 있으면 그제야 아버지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다섯 시쯤 아버지 저녁을 싸서 나를 데리러 왔다.


일곱 살이 되고 전자 앞으로 이사를 했다. 구매탄에서 삼성전자 앞까지 걸어다니기는 꽤 멀었다. 그건 아버지나 엄마나 나나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말도 없이 아버지를 보러 양복점에 가 버리는 나 때문에 더 이상 골머리를 썩지 않아도 됐다. 전자 앞으로 이사한 후 이젠 반대로 산드래미를 지나 새마을유아원에 혼자 걸어가야 했다. 2년을 못 채우고 4월이 되기 전에 안 가겠다고 드러누웠다. 엄마는 할 수 없이 새로 생긴 상은유치원에 나를 보냈다. 월화수목금 아침 8시 반이면 윤석이, 상현이, 진희, 수경이와 노란 봉고 차를 타고 최신식 유치원에 갔다. 이후 구매탄아파트에 가는 날은 없었다. 장은, 아이보리색과 하늘색이 위아래로 칠해진 29번 시내버스를 타고 영동시장에 가서 봤다. 양복감과 물미역과 조기와 시금치와 홍합과 귤과 연근이 든 까만 비닐봉지를 주렁주렁 손에 들고 한겨울 엄마와 함께 집에 왔다. 영동시장보다 가까운 구매탄시장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선 양복지를 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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