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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Feb 29. 2024

바람에 흩어질 말들

  갇힌 공간에선 할 수 없던 말을

  갇힌 공간에선 묻지 못한 말을

  인적 드문 곳, 길지 않은 시간 중에 하는 일이 가끔 있다.


  대학교 1학년. 같은 동아리 은지는 친하지도 않은 게 엄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너는 강물 같다고. 가만있는 것 같지만 매일같이 흐르고 흘러 먼 곳으로 가는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말들은 물살에 같이 흘러갈 것이므로 차마 못 한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다고.


   공강 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그 애는 한참을 말했다. 새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서. 뒤늦은 재수와 대학 입학에 대해서. 그리고 문학과 소설에 대해서. 그날 이후 은지는 동아리에 나오지 않았다. 수업에서  주쳤지만 가벼운 눈인사만을 건넸다. 그러다 같은 해에 졸업을 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이 내게는 많았다. 마치 내일 다시 보지 않을 처럼 작정한 듯 내게 속엣말을 하는 사람이.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그들은 잊혔다.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아 어쩐지 내 말을 오해 없이 가만히 들어 줄 이가 한 사람쯤 필요했을. 고르고 고른 사람이 굳이 내가 아니어도 크게 상관없었을. 나와 비슷한 다른 후보 꼽아 두었.


  갇힌 공간에선 쉽게 할 수 없던 말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린 곳에서 다 지난 일인 듯 이야기하는 일은 쓸쓸하다. 그랬었어. 그래서 그랬었어. 덤덤히 말하던 은지의 톤이 지금에야 생각나는 건 이제야 나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서일까.


  결국엔 바람에 흩어질 말들. 누군가에게는 닿고 누군가에게는 사라질 말들. 어쩌면 사라지기를 바라며 전하는 말들. 가벼웠으면 하지만 무거운 말들. 말의 무게를 새삼 느끼며 20년도 더 지난 은지는 가벼워졌을지 궁금해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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