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예보가 있었다. 휴대폰 앱으로 강수 예상 시간을 확인했다. 남편과 아이들의 난 자리를 정리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창문을 열고 청소기를 밀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전 10시. 날은 흐리고 바람에 물기가 묻어났다. 공원엔 꽃을 피운 나무들이 제법 있었고 산수유, 목련, 진달래, 청매화의 꽃색이 새삼스러웠다.공사로 파헤쳐진 길을 빙 돌아 걸었다. 산을 오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갑자기 비를 만날까 마음을 접었다. 성에 차지 않아 공원을 한 바퀴 더 돌고 황톳길을 걷는 사람들에 이끌려 숲 놀이터로 발걸음을 돌렸다. 위잉. 삼삼오오 환경미화원들이 겨우내 썩지 않고 쌓인 낙엽들을 진공 흡입기로 빨아들이면서 흙먼지가 일었다. 다음에 다시 와야지 터덜터덜 내려왔다.
공원을 나와 지하철역 쪽으로 걸었다. 역을 지나 사거리를 지나 횡단보도를 지나 새 아파트 단지를 지났다. 무인 카페 앞에서 멈칫. 골목을 돌아 교통공원을 지나 골목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 시장을 통과했다. 다시 골목을 지나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보고 골목을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으로 꺾어 걷고 걷고 걸어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소요 시간 1시간 20분. 걸음 수 8,394. 몸에서 가볍게 땀이 났고 비닐봉지를 들고 오느라 양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선홍색 가로줄로 불거졌다.
봉지를 식탁 의자에 내려놓고 비누로 손을 씻었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지니야 라디오. 낭독하듯 말했다. 봉지에서 물건을 꺼내 하나씩 정리했다. 쌀을 씻어 뚝배기에 물을 맞춰 가스 불에 올리고 크지 않은 원형 접시에 배추김치와 어묵볶음과 낙지젓과 콩나물을 담았다. 밥물이 끓을 때까지 식탁 앞에 앉아서 쓱쓱 휴대폰을 넘겼다. 구독하는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르고 브런치 앱을 켜서 통계를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닫고 수저를 놓았다. 천천히 밥을 먹고 루이보스차를 끓여 마시고 설거지를 개수대에 담가 놓고 멍하니 있었다. 시계를 보고 양치를 하고 안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켜고 카톡을 로그인하고 팀 뷰어를 켜고 일을 했다. 작은애가 왔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점점 괜찮아질 거야 위로를 하고 같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았다.
3시에 정확히 전화가 왔고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하다가 목소리가 점점 잠겼고 집에서 아이와 더 많이 이야기 나누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큰애가 집에 왔고 간식을 챙겨 주고 일을 하고 있는데 지방 출장을 위해 남편이 일찍 집에 왔다. 몇 마디 나누고 주차장에 짐을 내려다 주는데 밖에 비가 오고 있었다. 올라오니 영어 과외 선생님이 와 계셔서 차를 끓여 가져다 드렸다. 일을 끝마쳤고 논문을 읽다가 이내 덮었다. 오늘은 뭘 쓰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