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부가 서비스로 듀얼 번호를 만들었다. 월 이용료 3300원으로 기존 번호와 새 번호를 모두 쓸 수 있다고 한다. 휴대폰으로 114에 전화해서 원하는 끝번호를 말하면 사용 가능한 중간번호 네 자리를 두어 개 불러 준다. 그중에서 맘에 드는 걸 선택하면 기존 번호와 새 번호를 복수로 쓸 수 있다.
이제껏 핸드폰 번호를 세 번쯤 바꿨다. 삐삐를 쓰다 아버지가 1999년 겨울에 011로 시작하는 핸드폰을 개통해 주셨다. 2004년엔가 010으로 시작하는 새 번호로 바꾸었다가 2008년에 싸이월드 해킹 사건으로 한차례 더 바꾸면서 16년째 현재의 번호를 써 오고 있다. 외우기 쉬워서 큰 불편 없이 썼는데 십여 년간 이 사이트, 저 사이트에서 아이디와 패스워드 유출 사건을 빠짐없이 겪으면서 지금의 휴대폰 번호는 거의 공공재가 돼 버렸다. 스팸과 각종 광고 전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19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해 왔고 그로 인해 맺어진 인맥 또한 적지 않아서 번호 바꿀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문득 번호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세팅된 올해의 이런저런 프로젝트와 각종 요금 결제 등을 생각하니 새 번호를 쓰기에는 여러모로 번거로웠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듀얼 번호(투 번호)였다. 이미 사람들은 퇴사나 새 사업 시작, 업무와 사생활 분리 등을 목적으로 많이들 쓰고 있었다. 그만큼 원심력으로 분리된 '스핀오프'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N잡', '사이드 프로젝트', '조용한 부업' 등과 무관하지 않았다. 완벽한 영역 분리를 위해 카톡도 새 번호로 부계정을 만들 수 있는 세상이었다(멀티 프로필도 물론 있다).
일단은 두 번호를 유지하다 2~3년 뒤 새로 만든 번호로 완전히 갈아탈 생각이다. 듀얼 번호는 부가 서비스여서 새 번호를 메인 번호로 변경할 수 없다고 했다. 2~3년 후엔 기술이 발전하거니 운영 방식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때 기존 번호를 완전히 폐기할 작정이다.
남편와 아이들. 나름 엄선한 열세 명의 친구, 지인들에게 기존번호에 #을 붙여, 듀얼 번호 개설 알림 문자를 보냈다. 개중에는 피싱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새 번호를 차단한 이도 있는 것 같았다. 새로 만든 카톡 부계정에 친구 목록을 추가하려는데 추가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당장 급할 것 없고 기존 번호도 쓸 것이기에 상관없다. 200장이나 찍은 새 명함 속 휴대폰 번호가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도 뭐 필요하면 다시 찍으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