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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Apr 06. 2024

나의 핵심 기억은

  식탁에서 샤부샤부를 끓여 먹고 있는데 아들애가 <인사이드 아웃> 다시 보고 싶어요 했다. 너희들 어릴 때 진짜 많이 봤지. 엄마도 좋아했고. 엄마는 빨간색을 특히 좋아하지. 평소 버럭하는 나를 남편이 놀리듯 말했다. 내가 바로 받아 애니의 한 장면, 라일리 아빠의 머릿속 빨강 버럭이를 흉내 냈다. 뭐야? 뭐가 문제인 거지? 변기 뚜껑 안 내렸나? 뭐야. 으악. 그러자 바로 아들애가 말했다. 엄마는 우리 대할 땐 기본 초록색. 야! 하고 화낼 땐 빨간색. 어릴 때 얘기 쓰거나 말할 땐 파란색. 아빠하고 있을 땐 노란색이에요. 엄마한텐 보라색이 없어요. 내가? 엄마가 얼마나 소심한데. 우리랑 있을 땐 막 흥청망청인데요? 행여 분위기 쎄해질까 남편이 끼어들었다. 근데 노란색이 뭐였지? 기쁨이요. 엄만 아빠만 보면 웃잖아요. 아빨 너무 좋아해. 나는 반달눈을 하고 남편을 바라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기본적으로 까칠하고, 성마른 분노를 갖고 있으며, 심연에 우울이 깔려 있지만, 남편을 만나 많이 밝아졌고, 소심함은 엄마 역할에서 좋을  없어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 나.


  그러면서 아들애의 말이 자꾸 생각났다. 엄만 어릴 때 얘기 쓰거나 말할 땐 파란색이란 말이. 나의 어릴 적 핵심 기억은 슬픔인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깊게 박힌 슬픔이 가슴속에 시퍼렇게 남아 있어 그토록 세세히 묘사하는 걸지도 몰랐다.


  슬픔은 차갑다. 지나온 시절을 아무리 포장하고 미화해도 디폴트는 차갑다. 끝내 보듬어지지 못한 슬픔은 얼음 조각이 되어 남을 심각하게 찌를 수도 있을 거였다.


  <전자 앞 양복점집 딸1, 2> 특정 검색어로 우연히 읽었고, 과거 비슷한 시기에 수원 삼성전자 동문 앞에 살았다는 초등학교 동문의 댓글이 길게 달렸다. 써야 할 얘기가 많은데 덜컥 겁이 났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그때의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을 계속 이렇게 이야기 속으로 가져와도 좋은 것인지.


  결국 기억이란 모두 제각각이고
그것이 환기하는 감정 또한 그럴 것이기에.


  문득 글 쓰는 것이 무서워져 버렸다.


#글쓰기#핵심기억#슬픔#파란색#인사이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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