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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Apr 28. 2024

도로 아미타불일지라도

  공들여 해 온 일이 헛수고가 됐을 때 '도로 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도로 아미타불이다', '도로 아미타불에 그쳤다'라고 한다. 뜻이 비슷한 속담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십년공부 도로 아미타불이다'가 있다. '도로 아미타불'의 '도로' 의미가 '먼저와 다름없이. 또는 본래의 상태대로'든, '헛되이 수고함'이든, '전부'든 간에 '도로 아미타불'은 자체로 '말짱 꽝'이란 속어로 쓰인다.


  4월부터 108배를 시작했다. 종교는 없지만 절에 가면 마음이 편했고, 마음속 지옥을 다스리기 위해 십수 년 전 몇 달간 한 적이 있어 어렵지 않았다. 두 애가 학교를 가고 집에 혼자 있게 되면 소파의 기다란 쿠션을 들고 안방에 들어갔다. 25분 남짓한 시간이 2주가 지나면서 20분이 채 안 걸렸다.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삼배를 올리고 이어 108배를 하면 점점 숨이 가빠졌다. 몸에서 땀이 나고 얼음장 같던 손발에 피가 돌면서 따뜻해지면 조금씩 마음이 고요해졌다. '지심귀명례(至心歸命禮)' 지극한 마음으로 거룩하신 삼보에 귀의하여 절을 올리옵니다. 눈을 감고 절을 시작하면 어느새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원하옵건대 우주의 모든 존재 모두 함께 부처와 같이 되게 하여지이다' 사홍서원이 끝났다.


  더는 몸, 말, 생각으로 짓는 신구의(身口意) 삼업을 지 않으리라. 두꺼워질 대로 두꺼워진 업장을 쉬지 않고 깨뜨리리라. 매일 아침 절을 했다. 그러는 동안 글 쓸 마음을 내지 못했다. 글도 말과 다르지 않았다. 독이 있는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판에서 손가락이 멈추었다. 시(詩)는 좀 나을까. 은유와 상징 속에 숨으면 괜찮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검열을 할 바엔 차라리 쓰지 말까. 욕심, 성냄, 어리석음의 탐진치 삼독(三毒)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번뇌가 일었다.


  급기야 화가 터지고 말았다. 그래 그래 그러자꾸나.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작은애에게 폭주하고 말았다. 속이 얼얼하게 뜨거웠다. 오지 않는 잠 속에 아득바득 스스로를 구겨 넣었다. 도로 아미타불이었다.

  토요일. 남편과 약사사에 갔다. 초파일을 앞두고 탑 사방에 연등이 매달려 있었다. 연등 모양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드리워져 있었다. 나 108배 올리고 올게. 대웅전에 들어가 관세음보살상 앞에 방석을 가져다 놓고 삼배를 올렸다. 20분 넘게 느리고 간절하게 108배를 했다. 이마와 두 팔꿈치와 무릎이 땅에 닿을 때마다 관세음보살을 불렀다.


  개화산방으로 내려와 물을 마셨다. 빙 둘러보는데 연이 그려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읽는 순간 정신이 번쩍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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