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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Apr 28. 2024

가을에 만나

  개화산을 내려오는데 한데 모인 꽃송이들이 시선을 끌었다. 하얀 꽃잎 쪽에 솟은 갈색 꽃밥과 흰 수술대에 눈이 아찔했다. 반짝반짝 초록 잎은 비를 맞은 것도 아닌데 윤광이 흘렀다. 배꽃 닮았네. 부케로 들면 예쁘겠다. 속으로 생각하다 이름이 궁금해졌다. 여보. 구글 렌즈! 으이그. 자기가 좀 하지. 해 줄 거면서? 남편이 사진을 찍어 구글 렌즈 앱을 켜서 사진을 업로드했다. 이윽고 이름과 학명, 사전 정보가 쭈르르 나왔다.  


  팥배나무였다. 배꽃과 비슷하고 팥알 모양의 열매가 열려 팥배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장미과에 속한다고 했다. 활짝 핀 다섯 장의 꽃잎 중앙에 가는 수술들이 오밀조밀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모습에 , 참 봄을 열심히 살고 있구나 대견한 맘이 들었다. 남편이 계속 백과사전을 읽었다.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으며 잎과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쓰인다고 했다. 남편은 팥배나무의 열매 사진을 보여 줬다. 아, 이 열매. 꽃다발 한 켠을 차지하던 그 열매. 작은 꽃사과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던, 흰 가루가 묻어 있던 동글동글하고 붉은 열매. 가을이면 산에서 종종 보았던 그 열매. 맛이 달아 새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빈혈, 고열, 기침, 가래에 쓰인다고 했다.


  팥배나무는 꽃만큼 열매도 아름다웠다. 세상에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지만 설명을 들으니 다른 꽃보다 좀 더 예쁘고 특별해 보였다. 살면서 만나는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저마다 아름다웠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지 않고 지나쳐 버린 이가 너무도 많았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팥배나무는 내 눈에 들려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저 수십 년을 묵묵히 꽃 피우고 열매 맺을 뿐이었다.


팥배나무가 눈에 들어온 건 사건이었다.
내 눈에 들어왔던 그 많은 이들도
그래, 사건이었다.

  마침내 개화산을 내려오며 조용히 다짐했다. 올가을엔 꼭 너를 다시 보러 오겠다고. 꽃이 진 자리에 작은 구슬처럼 매달린 붉고 장한 너에게 고생했어 나지막히 말해 주러 오겠다고. 어쩌면 그 말은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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