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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May 10. 2024

새빨간 거짓말

  허무맹랑한 말이나 100% 뻥을 두고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대개 관용구로 처리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a downright lie'이지 'a very red lie'는 아닌 말. 하고많은 색 중에 왜 하필 빨간색일까. 언제 처음 쓰였는지를 알면 대충 가닥이 잡히려나. 오랜만에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열었다.


"정우회는 헌정회에서 연설할 때마다 조선 사람 오십 명을 입상케 하고 소동을 일으켜 연설을 방해하엿다" 말하야 {새빨간 거짓말} 전국 신문에 게재케 하엿스며..." <동아일보 1921년 11월>
관훈동 십팔번디 관훈동에 사는 리덕삼은 방금 우리 집 가족 세 사람을 칼로 찔너 죽이고 큰 소동이 일어낫다 함으로 그 파출소에서는 갑자기 크게 놀나서 일편으로 종로서에 뎐화를 하는 동시에 소인이 현장에 달녀가서 사실을 조사하여 본즉 이것은 그림자도 업는 {새빨간 거짓말임으로} 종로서에서 출동한 사법계 형사와... <동아일보 1922년 1월>
조사하여 본즉 강도마젓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 판명되야 톡톡히 매를 때리고 그냥 놀려보내엿다더라. <동아일보 1924년 12월>
문학에 여실한 묘사로 표현의 능사가 끗나지 아니할 때 상징이 시작하니 색이 문학 재료로 중요한이만큼 색과 상징의 관계가 깁다. '맘이 검다', '세가 푸르다'다고 하는 말이나 또는 '흰소리',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는 말이 다가치 상징적이니 대개 세계 각국에 이러한 상징적 어구로 항용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말이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든는 것인데 빛이 있을 수 있음니까 그러고 보니 '{새빨간 거짓말'이란} 도대체가 새빨간 거짓말(성북동 박성수 투). <경향신문 1948년 12월>
우리말에는 '{새빨간 거짓말'이란} 숙어가 있다. 그 유래를 잘 알 수 없거니와 '빨가숭이'니 '적나라'니 하는 말을 보자면 가리고 숨길 수 없는 환하게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란 뜻인가 한다. <경향신문 1958년 5월>
거짓말은 곧잘 색깔로 가려낸다. 누가 봐도 거짓말이 틀림없는 경우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붉은색이 가장 눈에 잘 뜨인다고 여겨서인가 보다. 영어에는 '흰 거짓말'이란 게 있다. 의사가 환자에게 힘내라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 같은 거다. <조선일보 1989년 8월>
백과사전에는 '명백하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 관련이 없다'라는 의미의 말로서 '{새빨간 거짓말}', 빨가숭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되어 있다. <조선일보 1989년 7월>
우리말에는 안타깝게도 일본식 관용구가 아직도 판을 치고 있다.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흥분의 도가니', '{새빨간 거짓말}', '달콤한 말', '재미있는 사람', '꿈 같은 일' 식 명사구가 그렇고...<경향신문 1990년 2월>
까만 거짓말은 우리말의 {새빨간 거짓말과} 똑같다. <경향신문 1996년 4월>

  가설 1. 1921년 일제 강점기 때부터 쓰였다면 일본어의 비슷한 표현을 가져다 쓴 건 아닐까.

  가설 2. 1948년에 이미 그 어원을 두고 신문 구독자가 궁금해했을 정도이고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하다면 어원을 특정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가설 3. 일본식 표현이라는 사설이 여러 번 등장하는 걸 보면 일본어 사전에 해당 표현이 나오지 않을까.


"새빨간 거짓말 일본어 표현"을 구글링해서 얻은 결과는 두둥! "真っ赤な嘘(まっかなうそ)" 소학관 디지털 대사전을 출처로, 해당 표현의 의미가 아래와 같이 나와 있었다. 틀림없는 거짓말, 완전한 거짓말로 국어에서의 의미와 다르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기자가 일본어의 '맛카나 우소'라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직역해 신문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 각종 매체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면서 사회적 공인을 받았으리 추정되었다. <문세영(1938), 조선어사전>과 <한글학회(1947), 큰사전>에 '새빨간 거짓말'이 없는 걸로 봐선 그 이후의 국어사전들에 올랐을 가능성이 있었다.


 소결 1. '새빨간 거짓말' 뒤에 동사(구)로 '판명 나다', '밝혀지다' 등이 오는 것은 명사 '거짓말'이 핵인 것과 관련됨.

 소결 2. 비슷한 구성의 '뻘건 거짓말'로는 쓰이지만 '거짓말이 시뻘겋다'로는 쓰이지 않는 형태적 고정성이 있음. '새빨간 거짓말'도 마찬가지.

 소결 3. 거짓말 구체적으로 대상화되어 새빨갛거나 시뻘겋다고 시각화 것에서 환유의 기제를 발견할 수 있음.

 소결 4. 향후 일본어 사전 및 일본어 말뭉치에서 '真っ赤な嘘' 쓰임 검토 및 분석 필요.

 소결 5. 나아가 <우리말샘>에 올라 있는 '새까만 거짓말'과의 의미 점유, 경쟁, 공인성 검토 및 검증 필요.


  거짓말이라는 갑분 글감으로 시작한 글 이렇게 끝맺을 일인가 싶지만. 결론은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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