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들어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뭔가를 쓰는 것에 시들해졌고, 글을 쓰는 궁극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면 분명히 대답할 수 없었다. 과거에 붙들려 풀어놓는 말들은 나에게도 남에게도 무거웠고 무거운 글이 얼마나 읽힐까에 생각이 닿자 지금껏 발행한 글들이 바위처럼 느껴졌다. 그러는 동안, 없이 살던 때. 뭐 좋은 게 있었냐며 왜 자꾸 그때 얘기를 들추냐는 말을 처음으로 엄마와 아버지 편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힘들게 고생했던 그 세월을 두 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음도. 그러자 글을 쓸 이유가 사라졌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발간이 되었을 책이 이런저런 이유로 다음 주로 미뤄졌다. 4월 말부터 지난 화요일까지 아홉 차례 원고가 왔다 갔다 했고 수시로 내용이 수정되고 교체되고 새로 쓰여졌다. 책 한 권을 내는 것은 사전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았고, 원고 상태가 좋았다면 이렇게 모두를 번거롭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너무 쉽게 생각했던 나를 탓하고 탓했다. 조판 편집 과정에서 따르는 원고 수정은 전에 없던 경험이었기에 10교는 숨 가쁘게 초와 분 단위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발간 기념 가족 파티를 하려고 했던 오늘은 평소와 별다른 게 없고. 샘들과 점심이나 저녁을 먹기로 했던 약속들도 6월 둘째 주 이후로 모두 연기되었다. 2년 만에 뵙는 조찬용 선생님께 제일 먼저 첫 책을 드릴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지킬 수가 없게 되었다. 고마운 분들께 책으로 인사드리는 일은 책이 서점에 배포되는 기간을 따지면 아무래도 6월 중순 이후가 될 듯하다.
그사이. 정말 이런 사소한 이야기가 책이 될까 싶던 날이 지났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빼박으로 원고료가 지급되었고. 세상 밖에 나올 수 있는 원고의 수준이란 가늠할 수 없어 답답했고. 겨우겨우 1차 마감을 했고. 해가 바뀌면서 장르와 구성도 바뀌었고. 개개의 문장은 낱낱으로 쪼개져 새롭게 편집되었고. 2차 원고 보완 요청이 왔고. 그림 작가가 섭외되었고. 에피소드마다 그림이 그려졌고. 3차 원고 보완 요청이 왔고. 다시 구성에 변화가 생겼고. 4차 원고 보완 요청이 왔고. 한 달이 꽉 차도록 내용이 기워지고 바뀌었고. 131쪽의 pdf가 영영 내 손을 떠났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나와 딸애와 남편과 아들애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의 첫 책이, 드디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