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골목을 걷는데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 서 있는 그 나무는 키가 제법 컸다. 와, 열매 좀 봐. 남편이 말했다. 동그란 열매는 언뜻 안 익은 청귤처럼 보였다. 대체 무슨 나무지? 남편이 사진을 찍어 구글 렌즈 앱에 업로드했다. 블로그 글들이 쭈르르 나왔다.
호두나무였다. 세상에. 탁구공만 한 진초록의 열매 속에서 여기저기 표면이 얽은 호두가 갈색으로 익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호두는 대보름에 먹는 땅콩의 단짝이니 땅콩처럼 땅속에서 자라겠지, 뭐. 멋대로 믿고 있었다. 잘 모르면서 저 혼자 생각해 버리는 건 이렇게나 어리석고 위험했다.
호두나무의 몸과 가지는짙은 회밤색. 곧고 매끈하고 단단했다. 다시 눈을 들어 나무에 열린 동그란 열매를 올려다보았다. 사방으로 늘어진 기다란 초록 잎자루는 얼기설기 거미줄 같았다. 잎자루 하나마다에 일곱 장의 이파리가 새의 깃털 모양으로 어긋나 매달려 있었다. 두어 개의 열매가 잎자루 가장 안쪽에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오직 호두만이 알았다. 9월, 다 익어 겉을 싸고 있던 초록 열매가 벌어져 쪼개지기 전까지는. 속에서 영그느라 갈색의 외피를 쓰고 더 좁게 더 구불구불 하얀 과실을 나누어 품고 있는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