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부엌 창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와. 빗줄기에 맞으면 아프겠다 싶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남편과 두 애가 차례로 집을 나서고 클래식 FM에서 사연하나가 소개됐다. 비가 반가운 때도 있지만 이렇게 모든 걸 삼키려는 듯 퍼붓는 비는 야속하다고. 지하철을 타러 간 아들이 빗물로 미끄러운 바닥에 넘어져 병원으로 실려가 겨우 조치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베란다 창문은 뿌옜고 빗소리는 무서웠다. 빨래를 개고 다 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 건조대에 넌 뒤 제습기를 작은방에 넣고 문을 닫았다. 노트북을 여니 충청권, 경기권, 서울 북부의 비 피해 사진이 섬뜩하게 나타났다.9시가 좀 넘어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잘 갔어? 고생 많았어.
-응. 괜춘했어요. 걱정 뚝.
-다행이다.
혼자만 집에 있는데 맘이 편치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계속해서 속보와 뉴스, 현장 사진 등을 클릭하게 됐다. 당진과 평택과 오산의 하천은 범람 위기라고 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누나.
-통화 가능해?
-응.
-괜찮지? 별일없지?
-어. 아직까진 뭐.
-평택 쪽에 하천 넘칠 정도라길래 걱정돼서. 아침에 운전해서 출근하기도 힘들었겠다.
-시내 쪽이 그렇고 여긴 괜찮아. 아침에 한바탕 난리였지.
-그랬구나. 뒤에 산도 있고 걱정이다. 내일도 비 많이 온다던데.
-시간당 88mm. 아오 징하게 오네 비. 산 무너질까 그게 걱정이지 뭐.
-그런 말 마. 괜찮아야지.
-진짜야. 예전에도 그런 적 있었어.
-아 정말? 조심해야겠다. 안 다치게 조심해. 점심은 먹었어?
-응 먹었어. 누나도 조심해.
-어. 항상 몸조심하고.
-알았엉. 잘 계셔.
평택에서 위험물 창고업을 하는 동생은 여러모로 고생이 많다.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나 태풍이 북상할 때. 폭설이 내릴 때는 특히 더. 창고 관리, 물류 관리는 기본적으로 몸을 많이 쓰는 일인데 일기가 나쁘면 고생을 몇 배로 해야 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피붙이로선 그런 동생이 안쓰럽고 안쓰럽다.
서울은 오후 5시쯤부터 비가 조금씩 약해지더니 6시 무렵에 그쳤다. 그사이 북한에서 또 오물 풍선을 경기 북부 상공에 띄웠다는 안전 문자가 발송됐다. 동부간선도로의 통제를 해제하고 전 구간 통행도 재개한다는 서울시청의 안내 문자도 20여 분쯤 지나 도착했다. 혼돈의 시간이 조금씩 물러가고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고 냄비에 물을 끓여 된장을 풀었다. 양파와 감자와 새송이와 팽이버섯을 씻어 숭덩숭덩 썰고 깐 마늘 두 알을 칼등으로 눌러 손잡이 끝으로 콩콩콩콩 찧었다. 멸치 가루를 된장국에 풀고, 썰어 둔 채소와 다진 마늘을 넣고 감자가 다 익었을 때 불을 내렸다. 냉동 파를 꺼내 국에 넣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평소 퇴근 시간대로 남편이 도착했다. 대접에 된장국을 푸고 공기에 밥을 담았다. 오늘 고생 많았지? 하는데 그렇게 많이는 아니었어. 했다. 무사히 출근하고, 무사히 일하고, 무사히 퇴근하고, 무사히 네 식구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저녁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