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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Aug 04. 2024

길은 있다

  성대 퇴계인문관으로 가는 언덕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회색의 차도 바닥에 X 표로 허리가 끊긴 하얀 화살표와 큼지막한 '길없음' 세 글자가 호흡도 없이 찍혀 있었다. 막다른 길이니 더 이상 진입이 불가하다. 그러니 회차하라는 메시지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십 년 전 이 언덕을 오르며 수업을 들으러 갈 때도 저 표시가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풍경이 가슴에 머무 것이 중요했다.


  차로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서는 갈 수 있었다. 길이 없다는 글씨에 어? 여기 길 있는데? 속으로 반박하는 사이, 발걸음은 벌써 기다란 나무 벤치 앞에 닿아 있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발제문을 꺼내 빠르게 훑던 옛날이. 그때 같이 공부던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떠올랐다. 오후 5시가 조금 안 된, 사월의 오후. 하늘은 높고 맑았다.


  석사를 마치고 이 길을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길을 따라 쭉 가지 않았고 더길을 내지 않았다. 길 너머가 궁금하지 않았다. 어쩌면 스스로 이 길에서 그들과 헤어졌다. 결혼을 했고 두 아이를 낳았고 오래도록 에서 돈을 벌었다.


  가끔 이곳 강의실에서 사업과 관련한 크고 작은 회의와 중간 발표회가 열다. 이 길을 오르내리며 비로소 알았다. 길이 보이고 안 보이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핵심은 길을 계속해서 걷느냐 아니냐였다. 다시 걸으니 거기가 끝이라 여겼던 길이 멈춤 상태에서 다시 플레이되었다. 


  사는 동안 막다른 길을 수없이 마주할 것을 안다. 그때마다 몸을 돌려 출구로 향하는 골목을 동물적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도.

멈추지 않는 한 이 길은 다른 길로 통할 것이다.


#길#노정#방향#과정#통로#사이#삶#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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