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셋을 쓰고 안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큰애가 들어와서 말했다. 며칠 동안 새벽까지 못 자는 게 마음에 쓰였나 보다. 설거지하고 티브이라도 보란다. 언제 이렇게 컸는지 엄마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예뻤다. 파형 보는 법, 문장 자르는 법을 일러 주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아들애가 나를 불렀다.
-엄마. 헬프!
-응?
-여기 파형이랑 소리 속도랑 안 맞아요. 시작점과 종료점을 찍을 수가 없어요.
-아. 원 파일이 이래서 엄마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다음 파일로 넘어가.
-네.
-엄마!
-이휴. 왜애?
-여기 문장이 통째로 빠졌어요. 어떻게 해요?
-자. 앞 문장 칸에 마우스오버. 우클릭. 뒤에 빈 줄 삽입. 텍스트 입력. 시작점과 종료점 찍고.
-근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엄마가 이따 치시면 안 돼요?
-ㅠㅠ 헤드셋 줘 봐. 다다다다. 다다다다닥. 다다다다다다다다(키보드로 음성 전사하는 소리)
-와. 엄마는 어떻게 그게 다 들려요?
-계속 이것만 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 하루에 여섯 시간 넘게 하는 거예요? 이것만 16분짜린데?
-휴. 응. 아직 20개 넘게 남았어.
-와우.
일일이 듣는 것도 고역. 정속도로 듣다 보면 졸려. 열 번을 들어도 안 들리는 건 안 들려. 이렇게 저렇게 해 보다 시간을 단축하면서 검수가 비교적 괜찮게 되는 작업 방법을 찾았다.
1) 반자동으로 넘어온 STT 파일을 열어 교열 보듯 오표기와 띄어쓰기 싹 고쳐서 1차 파일 정리.
2) 이후 같은 문장이 반복되는 파일들 찾아서 일괄 수정.
3) 잘못 전사된 표기들 찾아 바꾸기.
4) 1)~3)으로 손질한 파일을 편집기에 넣고 영상 파일과 같이 돌려서 수동 전사. 배속은 230%. 가늠이 안 되는 부분은 100% 정속으로 정밀 전사. 15초 이상 넘어가는 구간을 의미론적 구성에 따라 자르기.
5) 15초 이내의 문장이어도 문장이 2개 이상으로 되어 있으면 문장별로 자르기.
아들애에게 4개의 파일을 주고 4)와 5)를 부탁했다.
-엄마. 파일 하나 남았는데 너무 힘든데 이건 엄마가 해 주시면 안 돼요?
-하던 거니까 해 줘.
-힝. 알았어요.
아이가 나 대신으로 해 주는 건데 이 무슨 주객이 전도된 대화인가. 그 이후로도 큰애는 나를 몇 번 불렀고 나는 물음에 답해 주었다. 본의 아니게 하도급(?)이 되었다. 주말 이전에 모두 털고 간만에 큰애랑 오붓이 카페 데이트라도 해야겠다. 아들이 좋아하는 아이스초코 사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