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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Aug 07. 2024

입추 밤, 매미는 울지 않았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남편과 동네 한 바퀴 밤 산책을 나갔다. 어? 이상하다? 오늘은 왜 이렇게 조용하지? 남편이 말했다. 앰프를 켠 듯 몇 주째 고막을 때리던 매미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매일 밤 시끄럽게 울어 젖히는 매미를 지나칠 때마다 선수 입장! 매미들의 나이트에 들어갔다 나오는 기분이었다. 점인가. 단체로 딴 나이트로 몰려갔나. 생각하는 사이 삐삐삐삐삐 삐삐삐삐삐.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 어제보다 덜 습했고 공기 한결 가벼웠다. 입추라서 그런가. 신기하다 참. 남편이 말했다.


  오전 10시쯤 세차게 비가 내리고 정오가 안 돼 날이 갰다. 에어컨을 끄고 집의 모든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맴맴맴맴 매애애애앰. 맴맴맴맴 매애애애앰. 목청껏 우는 매미 소리가 그대로 귀에 꽂혔다. 여름은 역시 매미의 계절이야. 매미의 울음소리를 배경 삼아 들으며 점심을 준비했다.


  그랬었는데. 밤이 되자 거짓말처럼 단 한 마리의 매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공원 뒷길부터 중턱. 둘레길로 갈라지는 언덕. 놀이터. 농구장을 지나는 동안 귀뚜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공원을 나와 방화동을 크게 도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매미 소리가 전혀 안 들렸다.


  -애애앵. 잠시 안내 말씀 드립니다. 안내 말씀 드립니다. 오늘은 입추입니다. 여름이 얼마 안 남았다고 너무 무리해서 울지 않기 바랍니다. 밤낮으로 기온이 달라질 테니 오늘부턴 밤에 우는 것을 자제하고 힘을 아껴 두세요. 그 힘을 모아 다음 날 아침과 낮에 우렁차게 기 바랍니다. 아직 말복도 오지 않았습니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다시 한번 안내 말씀 드립니다. 매미 여러분들께서는 힘을 아끼시기 바랍니다.  


  남편에게 구내 방송 하는 매미 이장 흉내를 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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