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 답답하거나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 때 가끔 보낸다. 따라서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다는 말은 답답하거나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는 뜻이다.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되면 끌어안고 있던 고민이 객관적으로 들린다. 그러다 진행자가 자신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면 그 즉시 주관적으로 변한다. 마무리 멘트가 끝나고 선곡된 음악이 흐르면 감정이 휘몰아친다. 눈에서 눈물이 툭 떨어진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기쁘게 하고 동시에 가장 아프게도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했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아이. 질풍노도를 관통하고 있는 내 아이. '사춘기'라는 말은 뭔가 낮보는 것 같아 쓰지 않으려고 몹시 조심한다. 대신에 '청소년기'를 쓴다. '청소년기'라는 말은 담백하다. 아무런 편견도 감정도 들어 있지 않다.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가는 과도기.
그러므로 불안하고 기복이 심하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건 이 시기를 겪는 아이의 정서적, 인지적, 신체적 불균형 때문이지 내 아이가 이상해서가 아니다.
나를 아프게 찌르는 말을 묵묵히 듣는다. 아프다. 너무 아프다. 저렇게 아픈 말을 가슴에 품고 있는 저는 얼마나 더 아플까 생각하고 눈을 감는다. 아프지만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내게 말해 줄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