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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Sep 08. 2024

한 발짝 뒤에서

  구월이 시작되고 폭풍 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예정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자식을 키운다는 건 아이가 어린 것과 상관없이 매번 아이가 모든 일의 영순위로 끌어올려진다는 뜻인지 모른다. 


  난생처음 새벽 기상을 해 보겠다고 미션을 신청했다. 이런저런 일들로 공부가 뒷전인 걸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돈을 핑계 대기엔 남편이 벌었고, 내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쥐꼬리만 했다. 더 이상 학위를 미루기엔 지금도 너무 많은 나이였다. 그러나 결언했던 다짐은 이틀 한 번 꼴로 이어지는 아이의 등교 거부와 과민성 대장 증후군, 복통, 설사, 구토, 불안한 심리 상태 앞에서 형체도 없이 허물어졌다. 결심이 자리했던 자리엔 그만큼의 화가 겹겹이 쌓였다. 그리고 지난 수요일. 전쟁 수준으로 빵! 온 가족이 터져 버렸다.


  엄마는 내가 필요할 때 없었잖아. 그 말이 계속해서 나를 할퀴었다. 아이의 응어리진 마음을 푸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었다. 말을 아끼고 방문을 사이에 두고 톡으로만 대화했다. 비난과 분노와 슬픔과 절망이 펄펄 끓는 톡 창을 보고 있으면 속이 꽉 막혔다.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켰지만 집중할 수 없었다. 자꾸만 눈물이 자판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틀이 지난 이른 아침, 개킨 빨래를 들고 방에 들어갔을 때 아이가 깼다. 안아 달라고 했다. 아이의 불안이 다시 찾아오지 않도록 빈틈없이 아이를 안았다. 그리고 사과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 화내서 미안해. 네 얘기 안 들어줘서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아이가 팔을 풀고 씽긋 웃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짓는 저토록 가벼운 웃음을 얼마 만에 보는지. 금세 눈물이 고였다.


  일은 점점 더 밀렸고 공부는 한 줄도 못 했다. 급기야 납기를 해야 하는 오늘. 엄마랑 둘이 밥 먹으러 가고 싶다는 말에 그러자고 했다. 사고 싶은 화장품이 있다기에 오케이! 같이 가자고 했다. 집 밖으로 나온 즉시 아이는 떨어져 걸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식당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아이 손에 묻은 소스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물티슈를 가져다 주고, 더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물어보는 것에서 멈췄다. 종류가 너무 많아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고 해서 점원에게 가서 물어보고 적당해 보이는 것을 권했다. 이것저것 발라 보고 아이가 고른 것을 카운터에 가져가 물건값을 계산했다.


  아이가 내게서 독립해 나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뿐이라 여기며 조용히 아이 뒤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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