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과 자조와 꾐의 말
엄마. 뭘 그렇게 심각하게 봐?
카페 유리창으로 보이는 글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딸애가 말했다.
-어? 어. '호갱 없는 매장'이란 말이 너무 신기해서.
-그게 왜?
-'호갱'은 아마도 '호객님[호갱님]'이나 '호구고객님[호구고갱님]'에서 발음이 변한 '호갱'만 떼서 적은 걸 텐데. '호갱 없는 매장'은 "손님을 '호갱'으로 만들지 않는, 정직한 매장"이란 뜻으로 읽히기는 하는데. 할인 못 받고 핸드폰을 비싸게 산 경우에 스스로 '호갱 됐다'라고는 해도, 손님을 대놓고 '호갱'이라고 이르니 조롱하는 거 같아 은근히 기분이 상하면서도 신선해서.
집에 오자마자 신문 기사를 웹에서 뒤졌다. '호갱', '호갱님'이 언제 처음 쓰이기 시작했고 어떻게 달라졌는지. 아울러 비슷한 형태의 '호객', '호객님'은 또 어떠한지.
'호갱(님)'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처음 만들어진 말이 아니었다. '호갱님상 <2011년 12월 텐어워즈>'을 필두로 다음과 같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토익 호갱님 <2012년 4월>
사교육의 호갱님 <2012년 6월>
무료 검색 사이트 등록 약정 호갱님 <2012년 10월>
은행, 증권사, 카드사 등 금융회사의 호갱들 <2012년 11월>
병원은 영업점이, 환자는 호갱님이 <2013년 3월>
리콜, 국내 자동차 소비자만 호갱님 <2013년 4월>
특정 패딩 소비 관련 국제적 호갱, 글로벌 호갱님 <2013년 12월>
그러던 것이 2013년 4월 이후 '보조금 정액제' 보도에서 휴대전화 구매와 관련해 그 쓰임(호갱 주의보, 호갱이, 호갱님 우리 호갱님, 호갱 취급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및 개정으로 절정에 이른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호갱'은 여러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한국 이용자는 호갱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왜 호갱이 됐나
내 땅 갖고 다들 뭐래! 토지주는 호갱?
꼬마빌딩 투자, 숫자만 보면 '호갱' 된다
단통법 폐지됐는데 '호갱' 노리는 휴대폰 유통점 꼼수는 여전
호갱 하나 물었다
호갱노노(앱 이름)
휴대폰 호갱 자가 진단
호갱 테스트
호갱 구조대
폰 바꿀 때 호갱 안 되는 법
만만한 호갱
당신은 호갱?
호갱 조건 6가지
호갱 안 당하는 법
호갱 전문 갱단
호갱이 된 국민
호갱 노릇 더 이상 안 한다
호갱 환자
관광지 호객 행위인 데 들어가면 호갱 된다
이러한 '호갱', '호갱님'을 몇몇 매체에서 '호객', '호객님'으로 표기한 예가 발견되기는 하나, 극히 일부이며 '호객'으로 쓰일 때의 의미는 '물건 등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부르는 일'이다.
손님 손목 잡아끄는 호객꾼
호객 행위 대처법
호객 행위 떼어 내는 법.
호객 안 당하는 법
호객에 기빨리다가 양심 상인에게 최고급 횟감 사 먹은 사연
호객 알바
호객 수법
호객 방법
위 호객(呼客)'은 <마산일보 1961년 6월>에 가장 먼저 나온다.
'호갱(님)'과 '호객'의 쓰임을 시각화하면 다음과 같다.
'호갱 없는 매장'의 '호갱'에서 소논문거리를 얻을 줄은. 예상치 않은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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