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이름, 담기는 마음

-내 이름은 박무순?!

by 어슴푸레

내 최초의 별명은 '박무순(朴無順)'이다. 아버지의 절친, 꺽다리 선우 아저씨가 붙여 주었다. 송충이 눈썹을 굼실거리며 "우리 무순이 잘 지냈냐?" 알은체를 하면 나는 영 듣기가 싫었다. 노여움을 탈 때면 "제가 왜 무순이에요? 선영이에요!"하고 당돌하게 말대답을 했다. 허여멀건 무가 연상되고 너무 촌스러워서 '무순이'는 그야말로 딱 질색이었다. '순이'라는 이름에 강요된 '착함' 같은 게 느껴져 어린 맘에도 반항심 같은 게 일었다.


이제야 "무순이 괜찮아?", "무순이 좀 어때?", "무순이 언제 퇴원해?"라고 물었을 선우 아저씨의 마음이 읽힌다. 그리고 담담한 척해도 속은 까맣게 탔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팔삭둥이인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었다고 했다. 당시의 한 달치 인큐베이터 이용료는 수원의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도 아닌 나를 살렸다고 했다. 나는 출생과 동시에 성빈센트 병원 신생아실에 격리되었다고 했다. 죽을지 살지 몰라 이름을 지어주지 못했다고 했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레퍼토리, 가장 강력한 내 삶의 서사였다. 또한 '무순(無順)'이는 아저씨 딴에 '유식하게' 지은 이름이자, 아저씨만의 애칭이었다. 한 번도 엄마나 아버지가 나를 "무순아~"라고 부르는 걸 들은 기억이 없다. 늘 무순이는 선우 아저씨가 나를 놀리듯 부르는 이름이었다.


무순이가 선영이가 되는 동안, 집 냉장고 문짝 칸에는 네슬레 거버병이 한두 병씩 들어 있었다. 물에 타면 죽처럼 되는 가루도 있었고, 사과나 배로 만든 퓌레 형태의 이유식도 있었다. 거버병에 티스푼을 넣었다 내 입에 넣어 주던 젊은 날의 엄마. 길쭉한 보온 마호병을 꾹 눌러 따뜻한 물을 쪼르륵 받아 이유식과 번갈아 먹이던 엄마.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면 내 최초의 기억은 어디가 처음일까 싶어 어지러울 지경이다. 2단짜리 계란색 냉장고를 열면 우웅~ 소리와 함께 백열등 불빛이 마루로 흘러나왔다. 외국 아기가 남색 선으로 그려져 있던 유리 거버병. 가난한 살림에도 꼬박꼬박 미제 이유식을 샀을 엄마 아빠의 고단함이 전생처럼 겹쳐진다.


비싼 인큐베이터 덕분인지, 역시나 비싼 거버 이유식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흔한 장염 한 번 안 앓고 콩나물 자라듯 쑥쑥 컸다. 또래보다 한 뼘 이상 컸다. "너는 뭘 먹고 그렇게 키가 크니?"라는 말을 인사처럼 들었다. 나는 국민학교 5학년 때까지 전자 앞 여자애들 중에서 가장 키가 컸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붙여지는 별명에는 어린애 특유의 장난과 얼마간의 악의가 섞였다. '바가지', '안경 쓴 호박', '나무젓가락' 정도를 왔다 갔다 했다. '성씨가 박씨여서', '안경을 쓰게 되어서', '빼빼 말라서' 등 나는 순전히 친구들 나름의 이유로 일방적 불림을 당했다. 듣기 좋은 별명은 하나도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선우 아저씨가 지어 준 '무순(無順)'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예쁜 이름인지 안다. 내가 첫애를 낳았을 때 아저씨는 부기(浮氣) 잘 빼라며, 원기 잘 회복하라며 호박즙과 잉어즙을 몇 박스씩 달여 보내 주셨다. 강원도에 새 터전을 잡고 사신다는 아저씨는 작년 겨울, 손수 농사를 지어 짠 100% 국산 들기름을 4리터나 보내 주셨다.


"우리, 무순이 잘 지내고 있냐?"

허허허 웃고 계실 선우 아저씨가 문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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