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첫 '절친'을 꼽으라면 단연코 서울식당 윤경이다. 일신라사가 전자 앞으로 이사 오고 사귄 친구니 예닐곱 살 때부터 같이 놀았지 싶다. 그 애와 난 참 달랐다. 난 키가 컸고, 윤경인 작았다. 난 조용했고, 윤경인 말을 잘했다. 난 갈등이 싫어 잘 져 줬고, 윤경인 늘 이기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애가 좋았다. 그러나 크면 클수록 엄마에게 윤경이와 비교를 당했고 슬그머니 경쟁의식도 생겼다. 그 애는 작지만 야무지고 똑 부러졌다. 엄마는 내가 맘에 들지 않을 때마다 "윤경이 반만 닮아 봐라." 했다. 난 그 말이 듣기 싫었다.
윤경이네 집은 시각적으로 참 예뻤다. 여름이면 보라색 가지가 활처럼 익었고, 겨울이면 매끈매끈 사철나무가 깍지를 톡 터트리고 주황색 얼굴을 내밀었다. 때마다 집 장미와 봉숭아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여름마다 능소화가 담장 아래로 늘어졌다. 윤경이네는 서울식당을 했다. 삼겹살과 찌개류, 빈대떡을 주로 팔았다. 은회색 양철 문 두 개를 나란히 잇대어 문을 닫고, 하나씩 빼서 문을 열었다. 식당 뒷문은 안채 마당과 연결되어 있었고, 마당 수돗가에는 윤경이 엄마와 일하시는 할머니가 매일같이 플라스틱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분주히 배추를 다듬었다. 늘 그날치의 푸성귀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작아져 허벅지가 양 손잡이에 다 닿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을 돌았다. 윤경이는 주로 마루에 나와 그림을 그리거나 요구르트색 일일 공부를 한 장씩 풀었다. 단순 노동에 지루한 할머니가 노래나 한번 불러 보라고 하면, 윤경이랑 같이 '요술 공주 밍키, 밍키 밍키~ 너와 나의 밍키, 밍키 밍키~' 합창을 했다.
유리병에 담긴 '서울우유'를 매일 한 잔씩 마시고, 집에 피아노가 있는 윤경이가 부러웠다. 나는 피아노를 어떻게 치는지도 몰랐지만, 밍키처럼 파마 단발머리인 윤경인 예뻤다. 윤경이가 뭔가를 해 달라고 하면 두 말 않고 다 들어주는 윤경이 아빠와 엄마가 신기했다. 키가 크고 백반증이 있던 윤경이 아빠는 경찰이라고 했다. 점잖고 말이 없었다. 윤경이 엄마와 키 차이가 많이 났다. 윤경이에게는 위로 오빠가 있었고 외삼촌 아들과 같이 살았다. 윤경이는 귀염을 많이 받았다. 그게 유복함 때문인지 그 애 특유의 사랑스러움 때문인지는 잘 몰랐다. 부럽지 않을 때보다 부러울 때가 더 많았지만 가끔은 우리 집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동네 아이들이 그 집 마당에 모두 모여 윤경이 오빠의 마술을 넋 놓고 보고 있으면 윤경이 엄마가 불현듯 나타나 소리를 빽 질렀다. "어서들 가. 너는, 누가 집에 애들 함부로 들이랬니?" 얼음장처럼 차갑던 목소리. 반짝반짝 빛나던 오빠의 얼굴은 금세 풀이 죽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날린 신문지 조각 등을 주워 방으로 휙 들어갔다. 공부도 잘하고 윤경이 아빠처럼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 그 오빠는 그 이후 잘 볼 수 없었다.
일요일 오후, 늦은 점심을 먹고 마루에 엎드려 놀고 있는데 윤경이가 찾아왔다. 느닷없이 엄마를 찾으러 가잔다. 엄마? 저녁 장사 준비를 하고 계실 텐데, 어디 가셨나 했다. 작은 보퉁이 같은 걸 들고선 울면서 말했다.
"선영아, 나랑 진짜 엄마 찾으러 가자. 우리 엄마 아니래. 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데. 흐엉엉."
억울하다는 듯이 세상이 떠나가도록 악을 쓰며 눈물을 펑펑 쏟기에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은 말 안 들을 때 어른들이 하는 거잖아. 우리 엄마도 그래애~"
"아니야, 우리 엄마 아니래. 난 우리 엄마 찾으러 갈 거야. 무서우니까 같이 가자. 응?"
한참을 달랬다. 다독이고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어떻게 윤경이 마음이 풀렸는지는 모른다. 한참 내 얘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갔다. 윤경이는 뭐가 그렇게 서러워 짐까지 챙겨 나왔을까. 그 애의 당돌한 용기에 깜짝 놀랐다. 어른들 누구도 윤경이네가 재혼 가정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같이 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됐다. 윤경이 엄마가 윤경이와 윤경이 오빠에게 대하는 모습이 다른 걸 보면서, 윤경이 아빠가 윤경이 오빠에겐 늘 별다른 말 없이 먼 산 보듯 하는 걸 보면서. '그렇다면 우리 엄마도 혹시... 계모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비싸디비싼 인큐베이터에서 죽다 살아 온 아이였으니.
윤경이 엄마는 매해 윤경이 생일 파티를 해 주었다. 동네 아이들을 모두 모아 그 널찍한 마루에 상 여러 개를 펴고 떡볶이, 짜파게티, 김밥, '사라다', 과자, 과일, 수수팥떡, 조안나 아이스크림을 한껏 차려 냈다. 빙 둘러앉아 다 같이 먹는 즐거움. 그 집은 부자였다. 거실 오른쪽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나는 80년대 부잣집의 전형을 윤경이 집에서 보았다.
5학년 이후로 그 애와 나는 급격히 멀어졌다. 신기하게도 국민학교 내내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고, 중학교 이후에는 소식조차 모르게 되었다. 교우 관계가 대인 관계의 축소판이라는 사실을 윤경이를 통해 배웠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그 애에게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오해는 늘 더 큰 오해를 낳았다.
지금식으로 좋게 말하면 '자기 주도 학습'이었지만, 사실상 심각한 직무 유기였다. 고석산 선생님은 학교에서 6교시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바빴을까. 늘 자리에 앉아 서류 같은 걸 만드셨다. 1교시 자습, 2교시 자습, 3교시 자습, 4교시 자습. 하아아 5교시 자습, 6교시 자습-.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스스로 공부해서 단원 평가를 풀어 내라고 했다. 숙제를 과목마다 냈다. 가뜩이나 셈이 약한 나는, 분수를 만나면서 산수를 놓았다. 진분수의 덧셈, 뺄셈까지는 어떻게 따라갈 수 있었다. 대분수를 가분수로 바꾸어서 더하고 빼고 다시 약분해서 진분수로 만드는 사칙연산에 혼이 쏙 빠졌다. 그런데도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혼자 공부하랬다. 나는 속셈 학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집에 전과도 없었다. 매일매일 학교 가는 게 고역이었다. 혼자 숙제를 해야 했으나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오빠는 중 3 입시생이었고, 엄마 아빠는 늘 장사에 바빴다. 가르쳐 달라고 할 사람이 없었다. 고민 끝에 나는 윤경이네 집에 갔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윤경이 집에 있어요?"
"어, 선영이 오랜만이다. 아니 놀러 나가고 없는데 무슨 일이니?"
"음... 저기... 전과가 있으면 좀 빌릴까 해서요. 숙제를 해야 하는데 집에 없어서요."
윤경이 엄마는 흔쾌히 빌려주셨다. 과목별 숙제를 다 하려니, 그리고 그걸 공책에 베끼다시피 빼곡히 적으려니 시간도 시간이고 나중엔 지쳐서 돌려주는 걸 잊어버렸다. 그렇게 며칠 집에 두었다가, 학교에도 가져가서 단원 평가를 베껴 내고, 집에 가져와서 또 숙제를 베껴 냈다. 전과는 마법 같았다. 이렇게 쉬운 걸, 바보같이 마음고생하고 집에도 늦게 오다니. 남의 물건이니 소중히 썼어야 했다. 빌린 즉시 가져다주었어야 했다. 가져다주고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다. 엄마가 서울 사는 막내 이모가 하는 서점에서 학기가 끝날 즈음에야 <표준 전과>를 사 줬을 때, 나 때문에 다 헤진 <동아 전과>와 맞바꿨어야 했다. 나는 모든 기회를 다 날려 먹었고 천하에 나쁜 애가 되어 있었다. 어느 날부턴가 윤경이와 윤경이 엄마는 내게 전과를 빌려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충북통닭 인선이네로 갔다. 그러나 인선이도 전과를 빌려주지 않았다. 처음엔 자기도 숙제를 해야 한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었다. 나중에 알았다. 윤경이가 '선영이의 배은망덕한 전과 빌림 사건'에 대해 인선이에게 이야기했고 인선이는 물론 소연이도 내게 전과를 빌려주지 않기로 도원결의한 것을. 더 나아가 나는 전자 앞에서 같이 놀던, 79년생 양띠 여자애들에게서 '은따(은근히 따돌림)'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친구들에게서 아웃이 되었다.
그날 내가 바로 윤경이에게 <동아 전과>를 돌려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소중히 잘 쓰고, 구김 없이 온전한 상태로 돌려주었다면. 아니. 미안하다고 사과했다면. 아니 아니. 고석산 선생님이 5학년 4반을 맡지 않았다면. 아니 아니 아니. 오빠한테 분수에 대해 물어보고 혼자 그 산을 넘었더라면. 지금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벌써 30년도 넘은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윤경이에게 이제라도 사과하고 싶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너의 전과를 갖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나의 부주의로 너의 깨끗한 전과를 엉망으로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실은 내 새 전과와 바꿔 주고 싶었다고. 너의 차가운 얼굴에 차마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적어도 나는 내 첫 '절친'을 그런 식으로는 잃고 싶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