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 대한 첫 기억은 구매탄아파트에 살던 다섯 살 때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먼저 눈을 뜬 오빠가 거실로 나갔다. "와, 선물이다. 선물." 포장지를 뜯으니 장난감 로봇이 나왔다. 어리둥절했다. 생일도, 어린이날도 아닌 추운 겨울에 왠 선물인가 했다. 오빠 것 옆으로 작고 네모난 분홍 젤리가 설탕을 가득 묻힌 채 길쭉한 상자 안에 잠자코 있었다. 그게 내 몫인지, 오빠와 같이 먹을 고급 간식인지 알지 못했다. "엄마, 내 거는?" 물을 생각조차 못 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선물과 한껏 신난 오빠의 모습에 "와, 오빠는 좋겠다."가 끝이었다. "밤에 산타 할아버지가 두고 갔나 봐." 이름도 이상한 '산타' 할아버지라니. 오늘은 순 모르겠는 일 투성이였다.
유치원에서는 갖고 싶은 걸 써서 내라고 했다. 그리고 그걸 집에서 준비하라고 했다. 12월 재롱 잔치를 몇 주 앞둔 어느 주말이었다. 나는 눈치가 빤했다. 크리스마스 행사 때 산타 할아버지가 나눠 줄 선물을 아이 모르게 준비해서 원으로 보내라는 거였다.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갖고 싶은 게 없었다. 아니 갖고 싶은 게 있었지만, 가질 수 없다는 걸 익히 알고 있었다. 풍성하고 고운 금발의 마론 인형 대신 '스케치북'이 갖고 싶다고 썼다. 며칠 뒤 오뚜기슈퍼에 가서 밍키 그림이 그려진 700원짜리 스케치북을 사 왔다. 엄마는 그 스케치북을 속이 완전히 비치지는 않는 얇은 달력의 안면으로 포장했다. 리본 하나 달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두꺼운 도배지 뭉치 같았다. 그 선물이 산타 할아버지의 자루에서 나오고 내 이름이 불렸을 때, 어서 이 엉성한 선물 증정식이 끝나기를 바랐다. "와! 내가 원하던 건데." 방방 뛰며 호들갑을 떠는 아이들을 나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애들은 갖고 싶다고 써 낸 선물을 어른들이 사 보냈다는 걸 모르고 저러는 걸까. 한심스러웠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
배가 고팠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자기 아이를 찍는 부모들 틈에서 나는 구겨진 빨래처럼 앉아 있었다. 동생 반의 펭귄 춤은 다음다음이었다. 유치원 원장님이 관객석으로 내려와 손나팔을 불었다.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펭귄 옷과 노란 고무줄을 단 주황 바가지를 들고 무대 뒤쪽으로 갔다. 아줌마들의 발에 밟히지 않기 위해 쏜살같이 커튼을 열고 동생 뒤에 섰다. 동생에게 펑퍼짐한 펭귄 옷을 갈아입히고, 바가지를 씌우자 한 선생님이 돌아가며 아이들의 입술에 빨갛고 동그랗게 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일제히 줄을 세우자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윽고 펭귄 춤이 시작되었다.
열다섯 명의 꼬마 펭귄들이 같은 듯 조금씩 다른 펭귄 옷을 입고 파닥거렸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일제히 떼를 지어 걷다가 몸을 휙 돌려 춤을 추었다. 쇼 비디오자키의 <동물의 왕국> 심형래 펭귄이 열다섯 명의 꼬마 펭귄으로 분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동생의 바가지 모자가 머리에서 굴러떨어졌다. 다시 씌우려 선생님이 다가갔지만 고무줄이 끊어진 모양이었다. 동생은 모자 없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춤을 추었다. 펭귄 춤은 귀엽지 않았다. 내가 다 망친 건가 가슴이 방망이질 쳤다. 나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재롱 잔치가 끝나고 대부분은 택시나 자가용을 타고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와 외할머니, 동생은 익숙하지 않은 동네에서 버스 노선을 확인하느라 늦게까지 정류장에 남았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집에 왔을 때는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밥도 먹지 않고 대충 씻고 잠을 잤다. 자면서도 다리가 너무 아팠다.
몇 주가 흐르고 동생의 유치원 수료와 함께, 동생의 이름이 적힌 비디오테이프가 집에 도착했다. 1년 동안의 모습이 드문드문 녹화되어 있었다. 철도박물관 견학, 원천유원지 소풍, 점보파도풀장 나들이, 생일잔치, 가을 운동회 다음으로 재롱 잔치가 이어졌다. 펭귄 춤이 시작되었다. 동생의 바가지가 바닥에 떨어질 때 엄마가 차갑게 말했다. "누나가 돼서 동생 좀 잘 챙기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펭귄 춤을 다 보지 못하고 방 밖으로 나갔다.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둔 주말은 특히나 더 대목이었다. 11월부터 아버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양품점 쇼윈도에 불을 켜고 캐럴을 틀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했다. 대여섯 시간이나 가게를 비우고 막내 재롱 잔치에 엄마를 보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손이 모자랐다. 부모님에게는 언제나처럼 '착한' 딸이 있었다. 두 손주를 부탁할 외할머니도 있었다. 그 누구도 싫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티브이에서 방영되는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는 하나같이 비현실적이었다. 하필이면 크리스마스에 빈집을 노리는 2인조 도둑과 그들을 쥐락펴락 골탕 먹이는 말썽꾸러기 케빈은 미국이니 가능한 스토리였고, 마차 가득 선물을 싣고 하늘을 나는 루돌프는 말이 안 됐다.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놓고 간다는 산타클로스는 굴뚝 없는 집엔 어떻게 들어오냐고 직접 묻고 싶었다. 아무 선물도 없이 크리스마스가 허무하게 저물고 있었다. 그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쓰며 체념하듯 말했다.
세상에 산타가 어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