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지곡리 첫 가족 여행

by 어슴푸레

다섯 식구, 첫 가족 여행지는 용인 지곡리였다. 엄마 말로는 지곡 저수지였다는데, 나에게는 '지곡리'라는 지명과 작고 얕은 계곡 하류로 각인되어 있다.


아버지는 자갈과 모난 돌이 많은 땅에 빨강 사각 텐트를 쳤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텐트의 네 귀에 달린 고리에 플라스틱 못을 묶어 땅에 팽팽히 박았다. 종일 비가 내렸다. 나는 비를 맞으며 다리에 튜브를 끼우고 수영하며 놀았다. 엄마는 작은 우주선처럼 생긴 파랑 코펠 버너에 냄비를 올리고 오래도록 닭죽을 끓였다. 텐트 위에 친 회색 방수막에서 이따금씩 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슬아슬한 곡예를 끝내야만 하는 곡예단원이 된 기분이었다. 한 김 식으라고 떠 놓은 닭죽 그릇을 잘못 쳐서 발등에 엎었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 붕 날아 계곡 물에 몸을 던졌다. 불거진 화상이 더 힘을 쓰지 못할 때까지 오래오래 나를 물속에 담가 두었다. 나는 속까지 시원해지길 기다리는 수박처럼 물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래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비가 내렸다. 발목까지 오던 물이 어느새 무릎까지 차올랐다. 맨발로 자갈 무더기를 걸어 다니다 날카롭고 긴 유리 조각에 발바닥을 베었다. 발바닥이 금세 벌어졌다. 피가 자갈 위에 묻어 났다. 엄마는 나를 낚아챘다. 아버지는 메리야스를 북 찢어 내 발바닥을 여러 번 둘러 꽁꽁 싸맸다. 엄마는 넓적한 돌에 타원형의 흰 오징어뼈를 칼로 긁어 소복해질 때까지 가루를 냈다. 아버지는 내 발바닥을 잡고 길게 난 자상 위에 곱디고운 오징어 뼛가루를 여러 번 뿌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피가 멎었다.



그러나 비는 그치지 않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사건, 사고만 가득한 양복접집의 첫 번째 여름 휴가가 맥없이 끝나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늦게 철수했다면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 모두 죽었을지도 몰랐다고 했다. 부랴부랴 텐트를 접고 잡동사니를 가방에 때려 넣으며 "오메 오메~ 뭔 비가 이리 내린다냐." 한마디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의 집 처마 밑에 다섯 식구 쪼르르 서서 장대비가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근신했다고 했다.


엄마는 어려울 때 내게도 이 처마 밑처럼 도움 주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는 날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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