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심인 사람에게 약하다. 자기 일에 몰두하고 진심인 사람. 그런 사람이 조금 덜 힘들고 금방 자리 잡기를 바란다. 나는 조용히 그를 돕는다. 그의 열심을 다른 이들도 알아볼 수 있도록. 진지함뿐인 얼굴에 '신남'이 가득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진심이 어떤 결과로 보일 때 저 혼자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보니 카톡 알림이 298개나 와 있다. 무슨 일이지?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스친다. 밤새 또 누가 아프거나 다치거나 죽은 건가. 아, 제발.
카톡 알림의 근원지는 동네 전통 시장 초입의 과일 가게 오픈 채팅 방. 100명 한정으로 모집한 우수 고객에게 전 상품 10% 현장 할인, 기존가의 기본 2~3000원 할인 공구 판매를 하는 터에 나는 한 달 전부터 단골이 돼 있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물건을 사면 사진을 찍어 어김없이 채팅 방에 올리고, 맛과 품질에 대해 짧게 톡을 남겼다. 나는 이 가게가 잘되기를 바랐다. 정직한 땀이 보상받는 걸 보고 싶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전통 시장에서 젊은 감각,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모습에 금방 입소문이 날 거라 믿었다. "사모님 오셨어요!" 사장님의 경쾌하고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날이 갈수록 가게엔 신바람이 돌았다. 일찌감치 우리 집 가계 지출에서 과일값이 고깃값을 앞질렀다.
"곧 채팅 방 문이 잠깁니다. 새 방으로 이동하세요. 요기로 클릭."
어떤 사유도 없이 서둘러 새 방으로 입장하라는 메시지가 과일 가게 채팅 방에 반복되어 복사, 붙여 넣기 되어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별로 좋지 않은 촉이 왔지만 개의치 않고 해당 메시지를 클릭했다. 새 오픈 채팅 방에는 대다수의 회원들이 이동되어 있었다. 회원이 300명을 육박하고 있었다. 100명이 넘어서 새 방을 개설했나 보다 했다. 그런데 관리자에 의해 회원들의 톡이 시시각각 지워지고 있었다. 방 이름은 "번개 뉴스." 오전 9시에 알림이 뜰 것이라는 불친절한 메시지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직감처럼 들었다.
"방 망하고 싶으세요? 누가 무홍하래요?"
즉각적으로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는 메시지. 아 망했다. 모바일 도떼기시장에서 이렇게 또 개인 정보가 팔린 건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9시가 한참 지나 채팅 방을 확인했다.
각종 주가 관련 이슈의 링크, 그래프가 채팅 방에 도배되어 있었다. 급등 유력 종목을 추천받고 싶은 사람은 채팅 창에 '희망'을 쓰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회원 중에는 '희망'을 쓴 사람도 있었다. 이 무슨 일인가. 나만 모르는 모종의 뭔가가 있었던 건가.
"아무 사전 공지 없이 이러시다니 전 나가겠습니다. 당혹스럽습니다."
기존 과일 가게의 운영자가 이 방에 있는지 어떤지도 모른 채 나는 최대한 예를 갖추어 불쾌함을 표하고 방을 나갔다. 당장 주말에 과일 가게에 가서 어찌 된 영문인지 물을까 했다. 항의를 할까도 싶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이미 마음을 상했고 과일 가게가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VIP라는 오픈 채팅 방이 열리고 내가 초대되었다. 수익률 어쩌고 하면서 운영자와 다른 한 명이 이미 대화 중이었다. 챗봇 또한 가동되고 있었다.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가차 없이 방을 나갔다. 또다시 나는 끌려가듯 초대되었다. "나가셨네요." 그 즉시 나는 나가 버렸다.
신경을 끄고 일을 했다. 다른 카톡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열었는데 "애무 9단"이라는 대화명을 한 사람이 이미 말을 건 상태였다. 대화명 왜 이래.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출근하셨어요?" 맥박이 빨라졌다. "저한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우리 친해져요." 이건 뭥미. 뭐 하자는 건가. 처음 당하는 일이었다. 이쯤 되면 폭력이었다. 방을 나갔다. 사냥감이 된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나는 소환당했다. "뭐 하고 계셨어요?"
결국 신고하기를 눌렀다. 사유에 '음란/성인'을 체크하려다 성적인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기에 '기타'로 체크했다. 내 오픈 채팅 아이디를 삭제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에 다음의 단어가 40 포인트 고딕체로 타이핑되었다.
손절(損切)
호의가 당혹으로 돌아오면 나는 가차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