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서 자리에 누워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겨우 잠이 들면 매번 악몽을 꾸었다. 무면허로 왕복 4차로를 운전하는 꿈. 그러다 경찰관에게 딱 걸리는 꿈. 추격을 피해 도망가는 꿈. 뭔가를 들이받는 꿈을 반복적으로 꾸었다. 그러면서도 내년 1월, 설 연휴가 지나면 퇴직 의사를 표하리라 매일매일 퇴사의 칼날을 벼렸다.
오늘 오전, 내년 사업 업무 분장에 대한 팀 전체 회의가 있었다. 맨 뒷장부터 훑었다. 두둥, 당첨! 디데이 바로 오늘 가나요? 팀장님의 설명이 한 귀로 들어가 한 귀로 빠져나갔다. 분장 곳곳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이 내 것 같지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팀장님을 응시했다. 아주 오랫동안.
3시쯤 팀장님께 면담 요청을 했다. 불 꺼진 강사 대기실의 문을 열고 스위치를 켰다. 문을 닫고 마주 앉았다.
팀장님. 저 내년 1월까지만 일하고 퇴직하려고 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눈치셨다. 어디 다른 데가 됐냐고 물으셨다. 그냥 좀 쉬고 싶다고 했다. 6시까지 매여 있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조직 생활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팀장님은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거냐고 했다. "어딜 가도 여기보단 많이 주지 않을까요?" 툭 튀어나온 진심에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사전 일을 영영 안 할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연구진으로 참여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팀장님은 조용히 듣고만 계셨다. 그리고 덤덤히 말씀하셨다.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박 선생. 꼭 친하거나 옆 사람이랑 붙어서 마지막에 떨어질 때마다 보는 나도 마음이 안 좋았어. 그냥 운인 거야, 운. 나도 여길 뒤늦게 들어왔어.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사업 생각하면 잡고 싶지만 차마 더 있으라곤 못 하겠네. 학위 꼭 하고, 남은 한 달 동안 마무리 잘해요."
모르지 않았다. 나를 응원하고 걱정하는 마음들을. 나를 위해 절절히 기도하는 마음들을. 그래서 끝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1년을 더 있으나 2년을 더 있으나 이렇게는 더 이상 달라질 게 없었다. 서류를 통과해 1차 필기시험장에서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이들도 나를 끝까지 만나겠군.' 했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건지.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되기는 하는 건지. 네댓 살에서 많게는 열 살 이상 어린 연구원 선생님들과 경쟁하는 일이 점점 버거웠다. 그리고 올해 유월 사전 분야 연구직 채용 시험에서 떨어지던 날,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다섯 번째 고배였다. 이후 퇴직 날짜만 꼽으며 버티고 버텼다.
어쩌면 알 것도 같다. 이쪽저쪽 저울질에 끝내는 내가 '아니올시다'였던 이유.
긴 경력을 호봉에 반영해 채용할 만큼 과연 나는 가성비가 좋은 사람이었나.
면접 위원들은 내 근속 연수를 보고 미련하다 생각하진 않았나.
오늘 제일 많이 들은 말은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그다음이 "얼마나 고민했겠어요." 들을 땐 아무렇지 않았는데 돌아와 복기할수록 연신 울컥한다. 그래, 나 고생 많이 했지. 업무 위탁까지 장장 19년을. 고생 참 많이 했다.
내 2, 3, 40대를 보낸 국립국어원 사전팀.
정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