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 사전쟁이

사전과 사람들

-욕받이가 되어도

by 어슴푸레

처음 사전팀에 온 2004년 2월, 상근 연구원은 1명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22년 12월 현재 상근 연구원은 10명이다. <표준> 사전과 <우리말샘>. 두 개의 국가 사전을 운영, 관리하는 인력이 이렇다는 걸 사람들은 잘 모른다. 국가에서 만든 사전이라는 이유로 폄훼하기 바쁘다. 왜 우리나라엔 웹스터나 옥스퍼드 영어 사전 같은 '볼만한' 사전이 없냐는 말을 예사로 던진다. 기재부는 '짠!' 하고 새 사전이 나오는 데에는 예산을 주어도 이미 있는 사전의 품질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데에는 매년 조금씩 예산을 깎는다.


이 말도 사전에 없느니, 이 말이 어째서 북한어니,
일본 국어사전을 베낀 쓰레기니,
국민의 세금이 아깝느니,
국가가 사전을 만드는 건 전체주의적 사고느니.


저마다 숟가락 얹듯 한 마디씩 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곳의 사전 편찬 현실을 알고나 하는 말이냐고. 정말로 찬찬히 국어사전의 체계를 살피고 비판하는 것이냐고. 점조직 일개미처럼 짧게는 2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사전과 함께하는 편찬원의 하루를 얼마나 알고 하는 말이냐고.


국내에 국어사전은 적지 않다. 각자 좋다고 느끼는 사전을 보면 된다. 국가가 사전을 만들었으니 국민 모두 이것만 보라고 강제하지 않는다. 어떤 사전을 볼지는 개인이 선택하면 된다. 모든 책임을 <표준> 사전에 전가하는 것이 오히려 폭력적이진 않나. 비슷한 예로 특정인의 문제 발언을 언론이 퍼나를 때마다 <표준> 사전은 그야말로 동네북이 된다. 이쪽에서는 이쪽대로 저쪽에서는 저쪽대로 사전을 인용하며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때마다 '국어생활종합상담실'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전화통에 불이 난다. 사전이 주장의 명확한 제1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제목도 섬뜩하게 뽑은 책 제목을 보면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다. 국어사전이 미쳤다는 건 결국 국어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미쳤다는 말이지 않은가. 왜 그따위로 사전을 만들었냐는 말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표 나지 않는 집안일을 하듯 십수 년간 사전을 만들어 왔다. 이곳의 편찬원 모두가 그렇다. 칭찬은커녕 욕만 먹고 온갖 민원 전화에 시달리면서도 산적해 있는 일을 매일매일 해내고 있는 사람들. 이곳의 연구원 선생님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별이다. 나는 편찬원으로서 늘 다음의 말을 새기며 지내 왔다. 정말이지 사전과 사전을 만드는 이를 너무 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전 편찬에는 명석한 두뇌와 독창성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고도의 지성과 기술의 습득,
그리고 격무를 마다하지 않는 희생정신이 요구된다.
-Sidney I. Land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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