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짐을 뺀 지 2주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사이 띄엄띄엄 국어원 선생님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일자리에 대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간의 경력을 살릴 만한 곳의 링크를 나름 엄선해 카톡 채팅 창에 날려 주었다. 그중엔 세종시 문체부 국어 전문관 임기제도 있었고, 한 신문사의 교열 기자 채용 공고도 있었다. 나의 쓰임을 정하지 않고 나왔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뛰어야 벼룩.
515호 사전 편찬실엔 불이 꺼져 있었다. 9명의 편찬원 이름이 연구실 문 오른쪽 패널에 한 줄 기차를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저 대열에 낄 내 이름이 낯설었다. 이제는 직장인이 아닌 연구자와 프리랜서 사이의 어정쩡한 포지션일 거였다.
나의 연구력은 레벨 몇인가.
긴장하고 있었다. 학교에 제출할 서류를 갖고 지하철을 탈 때부터. 아니, 경력의 공백 없이 언정원에서 일해 보지 않겠냐는 지도 교수님의 제의를 받을 때부터. 아니, 퇴직 카드를 내밀기 한 달 전부터. 온 신경 줄이 날로 팽팽히 당겨지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10여 년 전과 다른 듯 비슷했다. 다져 놓은 안전한 곳을 떠나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했다. 이름으로만 알던 이들과 눈 맞추고 함께 부대껴야 했다. 국어원과 교수님께 누가 되지 않아야 했고, 오랜 경력이 독이 되지 않아야 했다. 일정 부분 자유가 주어지는 만큼 책임은 더 무거웠다. 내 몫의 일을 해내지 못하면 과업 전체에 문제가 생길 터였다. 내 능력치는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청송대 산책로에선 봄볕이 느껴졌다.
그렇게 뭔가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