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F의 감정곡선
우리 집에서 자주 작은 사고를 치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우는 사람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가장 크게 환호하거나 웃는 사람도 정해져 있다.
바로 극 F인 우리 엄마.
엄마는 정이 많다. 너무 많아서 내가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을 다 챙긴다고 정작 자기 자식들은 생각처럼 챙기지 못했다.
챙기는 것도 챙기는 거지만, 일단 우리 엄마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가 노는 것도 친구들과 여행을 가는 것도 지금껏 좋아하셔서 사실 집에서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은 얼마 되지 않는다.
나는 동생과 둘이 있던 시간이 많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꽤 어릴 때 일도 기억이 많이 난다.
살면서 크게 쓸모가 있진 않지만, 기억나는 세세한 부분 같은 걸 이야기하고 나면 가족들은 그때마다 기겁한다. 심지어 사진을 찾거나 물어물어 확인해 본 뒤에 한 번 더 기겁한다.
어릴 때 기억을 유달리 많이 가진 나는 누나만 졸졸 쫓아다니던 동생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게 30이 된 동생을 여전히 아기처럼 예뻐할 수 있는 이유 같기도 하고.
여하튼 우리는 밤에 부모님이 없는 집에 남겨져 있는 날이 많았다. 아빠는 대기업 회사원이셨는데 그때의 회사 문화란 회식이 업무의 진짜 연장이면서 매일같이 있던 때였다.
그렇다고 크게 무서워하고 그러진 않았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아는 어른만 해도 여럿 계셨고, 둘이서 투니*스를 보며 깔깔댔으니까.
그래도 알림장 내용을 확인받는 건 어려웠다. 잠들기 전 엄마나 아빠가 볼 수 있는 곳에 펼쳐두고 자면, 가끔은 사인이 되어 있었고, 가끔은 발견하지 못해 빈칸으로 남았다.
동생이 유치원이 끝나 유치원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 학교에서 돌아와 동생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엄마는 간혹 다른 이에게 우리의 밥을 맡겼고, 당시는 휴대폰도 없을 때였다.
그래도 그게 아주 힘들지는 않았다. 나는 동생 손을 꼭 붙들었고, 동생도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부터였지만, 그게 우리 엄마의 성격 이야기는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극 F인 우리 엄마는 상처도 잘 받는다. 나였으면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을 열등감 폭발조차 쉬이 넘기지 못하는 분이시다.
엄마가 울고 있으면 화가 난다. 감히? 우리 엄말? 하는 분노와 아니 왜 그런 인간한테 굳이 잘해줬대? 왜 그걸 무시를 못해? 하는 분노.
나는 엄마가 답답하다. 그러나 엄마를 상처 입히는 이들은 그 이상으로 혐오스럽다.
남편 잘 만나 편하게 살아서 여전히 해맑은 우리 엄마. 자식들 다 돈 벌 만큼 벌고, 부모님께 선물도 자주 하고, 시간도 같이 보내주는 효자들.
그게 딱 외부에서 본 엄마일 터. 어쩌면 자격지심이나 열등감을 자극하기 딱 좋은 사람이 우리 엄마일지 모른다.
어느 정도 진실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사람의 삶이 그렇게 좋은 것들만 가득 차 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이런 사실을 일찍 배웠다. 엄마가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자연히 그 안에 휩쓸렸으니까.
다만 엄마와 성향이 다른 나는 그걸 극복하는 법도 금방 배웠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나를 대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는 그냥 웃는다. 그게 상대에게 더 상처가 되리란 것, 내가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질려버려서 더 그러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해 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상대해 주고, 굳이 감정을 소모할 필요 없는 일에 감정을 소모하는 엄마를 평생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 그건 T와 F의 간극보다 먼, 극 T와 극 F의 차이일 수도 있다.
엄마는 기쁨도 많은 사람이다. 어느 날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그렇게 기쁨을 표출하신다.
우리 딸은 이렇게 잘 자라서~ 우리 아들은 이렇게 잘 자라서~ 너무 행복해 엄마는! 뭐 이런 정도?
나와 동생은 엄마의 자랑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자기 잘난 맛도 잘 아는 사람이다.
애초에 동생과 내가 어디 가서 기죽지 않은 건 그런 엄마의 영향이 컸으니까.
그래서 기분이 좋으실 때 칭찬하시는 말에 엄마 딸이니 그 정돈 기본 아니겠어? 한마디 얹으면 텐션이 하늘까지 올라가신다.
굳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진짜로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거다.
엄마는 나를 강하게 키웠고, 밖에서 욕먹을 짓을 하지 말라는 교육으로 일관했으며 내게 아주 많은 걸 배울 기회를 주셨다. 거기에 유학까지 보냈었다.
내가 어디 가서 기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으로 큰 건 부모님 덕이 몹시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얹은 말은 엄마의 기분을 맞춰주려는 의도보다는 인정한다는 사실에 가깝다.
그 온도 차이에도 기뻐하는 엄마를 보면, F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가끔은 내가 F였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해본다. 근데 별로 의미는 없다.
아무튼 감정적인 경향이 강하다 보니 엄마는 때로 실수도 하신다. 잦고, 작은 사고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이성적으로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일. 매번 웃어넘기는 충동구매부터 조금 복잡해지는 인간관계까지. 우리 집 사고뭉치가 치는 사고는 몹시 다양한데, 심지어 추진력까지 너무 좋으시다(!)
엄마를 말릴 시간 같은 건 절대 생기지 않는다. 알아채기 전에 이미 저지르시니까. 그런데도 엄마의 그런 사건 사고에 식구들은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잔뜩 풀이 죽은 엄마에게 그러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겠지만, 화를 낸다고 달라지는 게 아니니까.
나와 아빠는 사건을 수습하고, 동생은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엄마를 다독인다.
그리고 사건이 수습되면 한동안 같이 술을 마시며 농담처럼 엄마를 놀린다. 그러면 풀이 죽었던 엄마도 대응하면서 금방 기운을 되찾는다.
그게 극 F인 엄마를 둘러싼 우리 식구의 일상이다.
사실, 그 모든 번거로움을 감안한다고 해도 T 성향이 강한 집안에 극 F 하나쯤 있어야 활기가 생기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 가족이 서로 마주 앉지도 않았을 때라면 그저 하기 싫은 생각이었겠지만, 매우 친해진 지금은 우리 가족이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 어울릴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즐겁다.
어쩌면 가족과 오래 떨어져 살았던 내가 가족과 다시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매번 감정적으로 내게 부딪혀 온 엄마 덕이 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가족에게서 멀어졌던 이유 역시 엄마의 그런 성격 때문이었다는 건 아이러니지만.
그런 게 아닐까? 가족이어도, 서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어우러지는 데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엄마는 젊었고, 나는 어렸던 시절.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었고, 나도 딸이 처음이라 시간이 매우 필요했지만.
결과적으로 양극에서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아 정신과 상담까지 논의했었던 우리가 상담 없이, 이토록 친해졌으니까.
심지어 요즘은 월요일마다 엄마 강의가 내 회사 쪽 방향이라 시간을 맞춰 함께 출근한다. 둘이서 버스를 타고, 전철로 갈아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눈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옳다는 산 증인이 바로 우리 모녀일 거다.
아마 가족이 아니었다면,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을 관계이긴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