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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승자가 된 언니들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을 보고 나서

by 라떼

김연경 선수가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을 했다. 세계 배구의 레전드가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하게 되었다. 티비로 가슴이 조마조마, 손에 땀을 쥐며 보던 나는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아들과 아내의 구박을 받았다)


식빵 언니의 우승이지만 나는 두 팀의 모든 언니들이 우승을 했다고 생각한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면 그게 우승 아닌가. 두 팀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고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주었다.

IMG_9383.HEIC 우승이 확정된 순간 마지막 득점을 한 투트쿠 선수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는 김연경 선수

매 경기 뒤집고 다시 뒤집히는 명승부가 된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경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세트를 흥국생명이 따내어 승부가 거의 결정되나 싶은 순간에 정관장의 투혼이 발휘되었고 이들은 기어코 최종 5차전을 최종 5세트 승부까지 몰고갔다. 메가의 강타가 성공하면 고희진 감독은 그녀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운명의 5세트. 천하의 강심장이라도 긴장하고 두려울 그 살 떨리는 승부에서 양 팀의 언니들은 압박감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몸을 던지고 서로를 격려했다.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패자가 되어야 하는 스포츠 경기이지만 이날 이들은 승패에 관계없이 모두 승자가 되었다. 준우승 기념사진을 찍는 정관장이 펼쳐든 플래카드에는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김연경 선수의 앞날을 정관장이 응원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들은 결코 패자가 아니었다. 끝까지 투혼을 불사른 또 다른 승자 정관장 팀과 메가 선수가 있었기에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우승이 더 빛날 수 있었다.

IMG_9381.jpg 정관장 선수들을 위로하는 고희진 감독
IMG_9404.jpg 김연경을 응원하는 정관장 팀의 플래카드


우승팀도 울고 준우승팀도 울었지만 우리 식빵 언니는 울지 않았다. 마지막 세트를 앞두었을 때 느꼈던 심정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해보자'라는 의지가 생겼다고 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언니는 그 압박감을 뛰어 넘은 듯 보였다. 끝까지 동료들에게 힘을 주고자 화이팅을 외치고 격려하는 언니의 모습, 나는 이제 코트에서는 볼 수 없는 그녀를 그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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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팀이 우승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두 승자가 될 수는 있다. 이번 시즌 여자부 챔피언전은 그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흥국생명도 정관장도, 식빵 언니도, 인니 언니도 모두 승자가 되었다.


덕분에 배구 역사에 남을 챔피언전을 보며 언니들이 보여준 동료애와 투혼에 감동하고 배운 나도 승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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