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삭 속았수다를 보며 아직 어른이 못 된 아재가 흘리는 눈물
지난 주말 폭삭 속았수다를 마침내 다 보았다.
지금 새벽에 이 글을 쓰면서 드라마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는 또 운다.
"뭐가 이래"
삶이 뭐가 이래. 오십이 넘은 아재가 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못 된 것 같고 소중한 사람들은 힘들어하고 세상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먼저, 임상춘(필명) 작가에 대한 존경을 표하고 싶다. 나를 울고 웃게 만들었다. 잘나고 많이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힘겹게 살아온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수고했다고, 애 많이 썼다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작가의 마음에 감사드린다. 물론 그러한 작가의 의도를 영상으로 구현해 낸 김원석 연출가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다.
아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언급했다. 이 드라마를 안보면 대화에 끼지 못할 지경이었고 여기저기서 스포일러가 난무해서 조심해야 할 정도였다. 사람들과 얘기 나눠보면 각자가 울컥했던 포인트가 다 다르다. 각자의 삶에 비추어 드라마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눈물을 쏟았던 장면을 떠올려본다.
5화에서 관식과 결혼해서 살림을 시작한 젊은 애순은 어느날 밤 잠자리에 누워 관식에게 말한다.
"난 그냥 빨리나 늙었으면 좋겠어. 난 어른되면 울 엄마처럼 다 그냥 밥공기를 맨손으로 잡는 줄 알았어. 경자 이모처럼 빚쟁이들이 쳐들어와도 밥만 잘 비벼먹는 줄 알았지. 손에나 속에나 굳은 살이 절로 배기는 줄 알았는데 난 그냥 다 뜨거워 맨날 데도 맨날 아퍼. 나만 모지랭이인가. 남들은 다 어른 노릇하고 사나."
"걔들도 다 어른이래니까 어른인 척 하는 거야."
"난 그냥 빨리나 좀 늙고 싶어. 엄마 노릇이니 각시 노릇, 어른 노릇도 다 처음이라 그런가 뭐 이렇게 다 죽겠고 다 드센지 모르겠어."
애순은 관식에게 안아달라고 토닥여 달라고 하며 그 옛날 엄마의 자장가를 떠올리고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많은 장면들 가운데 나는 유독 이 장면에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이 글을 쓰며 다시 찾아보는 이 새벽에도 또 눈물이 흐른다. 쉰이 넘은 나이가 되었지만 나 또한 어른 노릇이 버겁다. 연로하시고 편찮으신 부모님의 아들 노릇, 내가 제일 아끼고 챙겨줘야 하는 아내의 남편 노릇, 아직도 제 길을 찾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아들의 아빠 노릇, 다 잘 하고 싶은데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몸과 마음에 굳은 살이 배겨 뜨거운 밥 공기를 그냥 맨손으로 척척 잘 잡고 왠만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도 밥 공기가 뜨겁고 마음도 무르다.
눈물이 또 흐른다. 관식의 말 대로 어른이 되어야 하니까 어른인 척 하고 살아왔지만 아직 어른은 되지 못 한 것 같다.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니 위로받은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다들 어른 노릇이 힘든 것이구나.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드라마를 보며 울었을 것이다. 나는 임상춘 작가가 내게 특별히 보낸 선물같은 이 장면에 울었다.
최종회의 마지막 대사는 이것이었다.
"폭삭 속았수다."
애 많이 썼어요. 작가가 보낸 마지막 인사에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살아오느라 애 많이 썼어. 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