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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언니 vs 인니의 손흥민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를 응원하는 아재 팬의 마음

by 라떼

아 식빵, 챔피언 결정전 4차전이 대전에서 열린 어제도 디그(상대의 공격을 걷어 올리는 수비)를 아쉽게 놓친 김연경의 입에서는 식빵이 튀어나왔다.


이 날 우승을 결정지으려는 흥국생명과 마지막 5차전이 열리는 인천으로 가겠다는 필사즉생의 정관장의 대결은 명승부였다. 정관장의 승리로 끝나 마지막 5차전이 바로 내일 인천에서 펼쳐진다. 흥국생명이 마지막 승자가 되어 김연경이 왕관을 쓰고 은퇴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승패에 관계없이 두 팀은 다 승자가 될 것이다.

김연경1.jpg 식빵 언니 김연경 선수 (사진-한국배구연맹)


지난 네 번의 경기에서 두 팀은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게임을 뒤집는 정신과 끈기를 보여 역대급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물론 팬들의 입장에서 명승부이지 선수들과 코치진에게는 피말리는 승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스포츠의 세계란 그런 것이 아닌가. 피말리는 짜릿한 승부를 팬들에게 선물하려고 노력하는 것. 양 팀의 선수와 코치진에게 먼저 박수를 보낸다.


생중계되던 올림픽 경기에서(아시아 예선인지 본선인지는 기억이 가물) 튀어나온 식빵으로 일약 식빵언니가 된 김연경은 이번 챔피언전을 끝으로 은퇴한다.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할 지 알기에 나는 이번 시즌 그녀의 '라스트 댄스'를 응원해왔고 급기야 사상 최초로 1,2차전에 직접 인천삼산체육관에 가서 응원을 하기에 이르렀다. 운 좋게도 내가 직관한 경기에서 흥국생명이 다 이겼다. 특히 2차전은 두 세트를 먼저 뺏기고도 나머지 세 세트를 다 따내어 경기를 뒤집는 짜릿한 명승부가 펼쳐져서 함께 모시고 간 아버지(아버지는 역사가 깊은 배구팬이시다. 물론 여태까지는 TV로만 보셨다)께 큰 선물을 드릴 수 있었다.

IMG_8267.HEIC 2차전 극적인 승리를 자축하는 흥국생명 선수들


솔직히 나는 열혈 배구팬도 아니다. 그저 김연경이 속한 흥국생명 팀 경기가 TV에 중계되면 응원하며 보는 정도의 아재 팬이었다. 내가 흥국생명을 왜 응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다른 팀도 많은데 왜 흥국생명? 잘해서? 아니다. 김연경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면 오로지 김연경 때문에? 그건 또 아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김연경이 맏언니로서 주도하는 팀의 바이브, 서로간에 보듬고 격려하고 얼싸안는 팀 분위기에 내 마음이 쏠리는 것 같다. 물론 다른 팀들도 각자의 화이팅이 있고 실수해도 서로 일으켜주고 격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흥국생명에는 역시 김연경이 있다. 김연경의 은퇴전 마지막 챔피언전, 이 의미가 나를 경기장으로 불러냈다.

IMG_9306.HEIC 핑크의 물결인 흥국생명 홈코트 인천삼산체육관

그녀를 사람들은 배구 여제라고 부른다. 앞의 '여'를 빼자. 그녀는 그냥 배구 황제다. 우리나라 남녀 배구를 통틀어 김연경 같은 세계적인 선수는 없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그녀는 '메시'다. 인스타 1700만 팔로워를 거느린 여자축구의 최고 인기스타 알리샤 레만이 있지만 김연경을 알리샤 레만에 비교하는 것이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세계 배구계의 메시같은 존재다. 그녀가 메시가 된 것은 화려한 공격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수비는 전 세계에서 독보적이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에서 김연경 만큼 수비력을 갖춘 선수를 나는 보지 못하였다.


상대편인 정관장의 활약이 없었다면 이번 챔피언전이 명승부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플레이오프전 포함 13일간 7경기를 치르면서 체력이 고갈되고 부상에 시달리는 정관장은 직전 2차전에서 두 세트를 먼저 따내고도 내리 세 세트를 잃어 패배하는 쓰라린 리버스스윕 패를 당했다. 3차전에서도 세트스코어 0:2로 뒤져 단 한 세트만 내주면 이대로 3연패하여 준우승에 만족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관장은 내리 세 세트를 따내 리버스스윕 승리를 가져오면 직전 경기의 굴욕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정관장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인니언니(이건 그냥 내가 붙였다^^)' 메가(메가와티)가 있다. 경기장에 가 보면 메가의 경기를 보러온 인도네시아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메가는 한마디로 인도네시아의 손흥민 같은 국민영웅이다. 그녀의 모국에서는 연일 메가의 활약이 대서특필 되고 있다. 히잡을 쓴 동남아 선수, 그녀의 활약은 편견을 넘어 우리 사회의 다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경기장에서 본 그녀는 정말 훌륭한 선수다. 정관장이 위기를 맞을 때 마다 메가의 통렬한 스파이크는 상대의 코트에 시원하게 꽂힌다. 4차전을 승리하고 인터뷰하는 메가는 눈시울이 붉어져 동료들에게 공을 돌린다. 손흥민이 인터뷰때 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세터 염혜선, 리베로 노란과 더불어 그녀 또한 부상투혼이라 4차전의 승리가 더 빛난다.

IMG_9356.HEIC 메가 선수 (4차전 극적인 승리 후 인터뷰 장면)

내일 열리는 운명의 5차전 마지막 경기를 보며 김연경의 팬인 나는 흥국생명의 우승을 열렬히 응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영화든 드라마든 상대가 멋있어야 주인공이 더 멋있어지는 법이다. 멋진 맞수이자 끈질긴 도전자 정관장이 있고 인도네시아의 손흥민, 메가가 있어 흥국생명과 김연경의 우승이 더 빛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한가지 고백하자면, 김연경의 라스트 댄스를 간절히 바라지만, 이번 챔피언전의 정관장과 메가의 투혼을 보면서 만약에 (이런 일이 있지는 않겠지만!) 정관장이 우승한다 해도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비록 준우승에 그쳤을지라도 결코 김연경 위대함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왜? 두 팀 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했고 보여줄 것도 다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면 그게 바로 진정한 우승이다.


김연경, 아니 김연경과 메가 두 언니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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