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국제적
한국에서도 이태원에 할로윈 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전에는 미국의 소비지향적인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서 비판적인 시각도 많았는데 글로벌 시대라서 그런지 이제 할로윈이 한국에서도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이곳 캘리포니아의 할로윈은 대략 9월 말부터 시작된다. 우선 놀이공원이나 호텔, 마트 같은 곳의 장식이 할로윈에 맞게 호박과 호박 괴물 등 (Jack O lantern)으로 바뀌고, 가정집 앞에도 갖가지 괴기스럽거나 때론 귀여운 할로윈 장식들이 하나씩 늘어난다. 사람들이 할로윈 기분을 내기 시작하는 것도 이때부터이다. 할로윈은 모든 성인들의 대축일 전야제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돌아온다고 믿는 아일랜드 켈트족의 문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날 죽은 이들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치 악마처럼 분장을 한 데서 할로윈 코스튬과 장식이 유래되었다.
우리 동네 할로윈 풍경을 잠시 감상해보자.
나 같은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할로윈은 좀 특이한 축제다. 음산한 (spooky) 풍경을 통해 기분을 내고 축제를 즐기는 것을 보면 별걸로 다 기분을 내고 축제를 즐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기독교가 중심인 사회에서 옛 토착신앙에 뿌리를 둔 미신적인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도 큰 특징은 '지향성'이 없다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축제에 웬 지향성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축제는 한해의 수확에 대한 감사, 조상들에 대한 기억, 새로운 시작에 대한 축하 등의 지향이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10월 3일 할로윈 날로부터 3일간 조상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멕시코 전통의 '죽은 자들의 날(Dia de los Muertos)' 이 조상들을 위한 '감사와 기억'을 통해 기쁨을 나누는 축제라는 의미가 있는 것과도 다르다.
굳이 할로윈의 의미를 찾자면, 파티를 열고, 아이들이 집집마다 찾아가서 문을 두드림으로써 이웃들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할로윈이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소비가 증가하는 시기라는 것을 보면 별 다른 의미 없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즐기는 소비적인 축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음산함을 주제로 '놀거리'를 찾은 것이 아닐까.
고유의 문화를 이방인의 시선을 가지고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지만, 할로윈은 뭔가 아쉽다. 특이한 축제에 숨은 의미나 지향성이 없으니 소비적인 축제가 된 느낌이다.
주제넘게도, 이방인인 내가 제안을 하자면, 할로윈 전통을 통해 '이웃들을 더 잘 알게 되고 이웃들과 나누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 멋지지 않을까. 실제로 개인주의적인 미국 사회에서 이웃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이 기간에는 Trick or Treat이라고 해서 아이들을 앞장세워 사탕을 받기 위해 이웃의 문을 두드린다. 실제로 엊그제 할로윈 날에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이웃의 아이들이 줄지어 사탕을 받으러 우리 집에 왔었다. 또한 할로윈 분장을 통해 딱딱한 분위기를 내려놓고 이웃과 만나서 편하게 얘기 나누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이한 분장을 한 이웃에게 "네 의상 멋지다. (I like your costume.)"라고 한 마디 던지면 대화가 시작된다.
지금 하고 있는 것에 스토리텔링으로 의미를 부여하기만 하면 된다. '이웃과 함께하는' 할로윈, 멋지지 않은가. 그러면 소비지향적인 축제에 대한 죄책감도 줄어들 것이다.
이상,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저 라떼의 오지랖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