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는 아빠 , 말리는 아들
지난 주말에는 쥴리와 더그네 홈스테이의 홈커밍데이가 있었다. 참석자들의 동의를 얻어 사진과 이야기를 올린다. 앞서 얘기했듯이, 라떼와 욱이가 쥴리네 홈스테이 최초의 한국인 게스트라는 사실! 나는 이 말을 듣고 나와 욱이가 적어도 쥴리네 가족에게는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되겠구나 하여, 자랑스러우면서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꼈다. 그간 쥴리와 더그는 일본, 유럽 등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을 게스트로 맞아 왔다고 한다.
홈스테이의 홈커밍데이는, 그간 쥴리네 홈스테이에서 머물렀고 지금은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홈스테이 동문(?)들이 명절이나 멤버들의 생일을 모아서 축하하기 위해 만나는 자리이다. 멋있지 않은가? 홈스테이 출신들이 호스트 가족을 잊지 않고 이따금씩 모여서 가족처럼 지낸다는 것 말이다. 타국 땅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기는 일이 아닐까. 이번 모임은 내게도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라 새로 만난 사람들과 기분 좋게 어울렸다. 미국 사람 아니면 일본 사람들이었지만 다들 편안하게 대해주었고 쥴리네 홈스테이를 매개로 연결되어 있는 분들이라 금방 친해진 느낌이었다. (물론 욱이는 아빠가 너무 오버한다고 옆에서 몇 번 눈총을 주었지만)
지난달에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에도 집에서 모여 파티를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번에는 쥴리의 큰 손녀인 엘리자베스, 쥴리네 홈스테이 출신 일본 사람 나기사, 그리고 또 다른 홈스테이 출신 일본인 아쓰시의 딸, 히까리까지 총 3명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다. 서로 준비한 선물을 주고 케이크를 자르고 맛있는 바비큐를 먹었다. 원래 쥴리와 더그의 집에서 모여 더그가 직접 해주는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데, 아쉽게도 그날은 더그가 2주간 아이다호로 일하러 떠나는 날이라 함께 하지 못했고 인근 식당에서 모였다.
생일을 맞은 주인공들이 속한 세 가족을 먼저 소개한다. 쥴리와 더그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다 결혼해서 출가를 했다. 그 가운에 큰 딸 제시카는 이웃 동네에 살고 있다. 쥴리의 손녀인 제시카의 큰 딸 엘리자베스가 이번에 20살 생일을 맞았다(욱이와 동갑이다). 엘리자베스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여 트롬본을 연주하고 빅토리아는 고등학생인데 마림바와 색소폰을 연주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음악적인 재능이 어디서 왔냐고 제시카에게 묻자, 자신은 아니고 자기 동생인 것 같다고 했다.
아마 가장 먼저 쥴리네 홈스테이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이는 아쓰시는 MBA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샌디에이고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 아쓰시의 아내 유카는 전형적인 일본 주부 다운 친절한 모습이었고 두 딸 쯔바사와 히까리는 귀여웠다. 나기사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인이고 그의 남편 다니엘은 멋진 일본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내가 영화배우 같다고 했더니 나기사 부부는 좋아했고, 욱이는 또 한 번 오버의 조짐이 보이는 나를 흘겨봤다.
이날은 또한 1년 반 동안 쥴리네 홈스테이에 머물렀던 쇼가 공부를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을 환송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쇼는 21살에 와서 이제 26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이날 환송 후에도 그저께 집에서 가진 마지막 저녁식사 때 쥴리가 준비한 스테이크를 먹고 내가 사 온 와인을 마시며(주로 내가 마셨지만) 앞날의 성공을 기원했다. 쇼는 이제 일본에 잘 도착해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하고 있다.
나는 멋진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그리고 저와 욱이도 이제 이 홈스테이 출신이 될 것임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좀 오버했다. 말도 많이 하고 심지어 개그도 몇 차례 시도하고. 물론 그러다가 옆에 앉은 욱이로부터 견제를 몇 차례 받았지만, 말없이 무게 잡고 앉아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생각한다. 유머는 만국 공통의 언어가 아닌가.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가 방학이 끝나 개강해서 학교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제가 굿뉴스라고 했더니, 엘리자베스는 슬픈 뉴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랬다, 엄마에게는 굿뉴스라고. 모두 웃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다가 제시카의 남편 래리와 제시카가 8살 차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내 딴에는 듣기 좋게 말한다고 생각하며 래리를 보며 내가 한 말이 이랬다.
"You look younger."
You look young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더 어려 보인다고 했으니 문맥상 제시카보다 네가 더 어려 보인다가 되고 말았다. 8살 많은 남편이 아내보다 어려 보인다고 하면 뭐가 되는지 다들 알 것이다. 제시카와 래리의 분위기가 순간 싸해졌음은 물론이다.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이다. 엘리자베스는 트롬본을, 빅토리아는 색소폰과 마림바를 연주한다는 것을 들은 나는 (참고로 나는 기타를 조금 친다) 분위기에 들뜨고 맥주 한 잔에 취했는지 급기야 엘리자베스와 빅토리아를 붙잡고 다음에 모일 때는 함께 연주를 하자고 제안을 하고야 말았다. 옆에 있던 욱이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정색을 했다.
"아빠, 사람들이 당황하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이 같이 연주하자고 하면 얼마나 어색하겠어요."
나는 그냥 분위기도 띄우고 재밌자고 한 말인데 뭐가 문제냐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초면에 좀 너무 나간 게 맞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좀 오버를 잘한다. 요즘은 옆에 아내가 없으니 욱이가 대신해서 나를 말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모임은 내게도 소중한 경험이었다. 타국에 와서 이런 가족적인 자리에 초대된 것도 기쁘고, 그 일원이 된 것도 행복한, 그런 모임이었다. 한 번의 인연으로 그치지 않고 이따금씩 만나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생활을 나누는 그런 인연을 특히 타국에서 맺는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다만, 앞으로 기분 좋을 때, 지나치게 오버하지 않고 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함을 새삼 느꼈다. 나이가 들어도 수양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나를 객관적으로 봐주고 말려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가만히 보면 이 녀석이 엄마를 닮아가고 있다.(아내가 이 글을 읽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