쥴리와 더그의 집에 살게 되었어요

아직 낯설지만 우리 집입니다

by 라떼

표지 사진에 보이는 집이 우리 집이다. 실은 반만 맞는 말이다.^^


반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머무는 것이라 아파트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다고 해도 살림살이를 장만해야 하고 식사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고 생각하여 나와 욱이는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현지에 사는 사람을 통해 찬찬히 알아보며 구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그냥 홈스테이를 중개해주는 사이트를 통해 구했다. 처음에 공항에 우리를 마중 나온 더그(더글러스의 애칭)는 좋은 사람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비록 이제 열흘 정도가 지났지만 만족하고 있다.


집은 1층에 방 3개와 화장실 2개가 있고 2층에 방이 하나 있는 구조로 아담하지만 아늑한 느낌이다. 처음엔 물론 내 집이 아니니 많이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내가 2층 방을 쓰고 욱이는 1층 방을 쓰기로 했다. 욱이는 기존 게스트인 일본인 쇼가 귀국하기 전까지 3주간만 서재방을 임시로 쓰고 있다.


2층의 내 방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햇살과 바람이 들어오는 들창이 하나 있다. 아래에서 막대를 돌려서 여닫는 전수동(?) 창문이다. 여름에 내리쬐는 햇볕을 직접 받는 2층 방은 한낮에는 뜨겁지만 저녁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20210807_080752.jpg 라떼가 쓰는 2층 방
들창으로 햇살과 바람이 들어온다

뒷마당에는 정원이 있고 작은 연못과 미니 폭포도 있다. 아침 식사 후 뒷마당 연못 옆에 앉아 떨어지는 물소리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때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20210808_093350.jpg 뒷마당에는 작은 연못과 폭포가 있다

호스트는 더그(Doug)와 쥴리(Julie)인데 세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두 분만 살고 있으며 홈스테이 호스트 경험이 꽤 많은 것 같다. 지금까지 브라질, 스웨덴 등 여러 나라에서 온 게스트들을 호스팅 했다고 한다. 일본 친구들은 몇 명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해서 왠지 우리가 나라를 대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 그리고 캐시(Cash)라고 하는 개가 한 마리 있다. 낯선 사람들이 보이면 짖어서 집을 지키는 캐시는 9살인데 아주 영리해서 산책 나간다는 뜻의 'Walk'를 알아듣고 쭉 기지개를 켜고 나갈 준비를 한다. 재미있는 것은, 더그는 캐시 앞에서 워크(Walk)라는 말 대신에 '더블유'라는 말을 쓰거나 손가락으로 걷는 신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대화중에 Walk라는 말이 나오면 캐시가 알아듣고 산책 나가자고 보채기 때문이다. 나와 욱이는 한국에서 개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우리가 집에 들어오면 반가워하는 녀석을 보면 기분이 좋다. 아마 이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아닌가 싶다.

20210808_080058.jpg 우리 집 개, 캐시(Cash)

쥴리는 우리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쯤 딸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나서 이 글을 쓰는 오늘 저녁에야 돌아왔다. 열흘간 더그가 우리 식사도 챙겨주고 안내도 해주었다. 그동안 더그랑 이따금씩 얘기를 많이 나누었다. 삼촌뻘 되는 연세인데, 흰 턱수염을 길게 기르셔서 산타클로스 같다. 젊은 시절 건축(Construction) 일을 많이 했고 포클레인 같은 건설 중장비 운전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퇴하여 사격훈련센터에서 일한다. 독자들은 왜 사격훈련센터에서 일을 하는지 궁금할 텐데, 더그는 군대생활을 6년간 했는데 무기와 폭발물 전문가로 일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총기 수집 애호가이기도 하다. 더그는 전형적인 백인 서민층의 모습인데, 늘 열심히 일하며 유머가 있고 가장적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친 트럼프적인 분이다.


홈스테이는 처음이라 어떤 생활일지 잘 몰랐는데, 더그와 쥴리의 집에서는 이렇게 지낸다.

주중에는(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과 저녁을 호스트가 준비해주고 금요일 저녁을 포함한 주말에는 게스트들이 알아서 해 먹든지, 나가서 사 먹으면 된다. 청소는 호스트가 하는데, 자기 방은 자기가 청소하고 빨래도 각자 한다. 식사를 한 후 설거지는 따로 하지 않고 각자 그릇을 일차로 닦아준 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제일 걱정하던 것이 식사였다. 토종 입맛인 나와 욱이가 잘 적응할지, 음식이 너무 짜거나 달지 않을지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더그는 우리가 첫 아침식사 때 베이컨이 너무 짜다고 말하니 다음부터는 좀 덜 짠 음식을 해주려 신경을 써 주었다. 아침은 주로 프렌치토스트나 샌드위치, 샐러드, 팬케익, 부리또(Burito)를 해주고 저녁에는 다양하게 감자, 고기, 샐러드 같은 것을 해준다. 쥴리가 오면 더 맛있는 것을 해준다고 하니 기대해 보려고 한다.


매일 이런 음식만 먹을 수는 없어서 주말에 우리는 가끔 햇반을 레인지에 돌려서 한국식품 마트인 H마트에서 산 김치와 밑반찬, 김 같은 것을 먹고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커피머신이 있어서 집에서 간 커피를 필터 종이를 넣은 캡슐형 플라스틱 틀에 붓고 내려 마신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침 먹고 커피를 한잔 내려서 뒷마당에 앉아 마시는 때이다.

더그가 해준 스모크 바베큐 폭립, 정말 맛있었다
타코로 먹는 아침 식사


더그의 생활은 매우 규칙적이다. 6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고 식사 후 개를 산책시킨 후 출근을 한다. 저녁 식사 후에는 티브이나 책을 보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간다.


앞서 말했듯이 더그는 보수적인 백인 서민층 할아버지이다. 한국에 있을 때 트럼프 지지율이 의외로 높은 것을 보며, 도대체 누가 트럼프 같은 사람을 지지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바로 더그 같은 분들이 지지하는 것이었다. 더그는 틈만 나면 얘기 중에 오바마나 바이든을 비판한다. 오마마 케어 때문에 자신은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의료보험으로 냈는데 이제는 이민자들까지 케어하는데 쓰느라고 의료보험료를 올렸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나는 가만히 그의 얘기를 듣는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총기 마니아다. 그가 총기 소지를 찬성하는 사람인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미국의 총기난사사건 뉴스를 보며 왜 정부가 총기 소유를 금지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더그는 정부로부터, 범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면 총이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가 총을 내게 보여주었을 때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분에게 총은 그냥 자신을 보호해주는 수단의 하나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더그는 많은 면에서 보수적이라 나와 생각이 크게 차이가 난다. 하지만 삼촌뻘 되는 분이니 국적을 떠나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이를 부각하기보다는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성을 찾는데 더 집중할 생각이다. (영어가 서툴러 반박하고자 하여도 잘할 수가 없다는 것도 주요한 이유임을 고백한다^^) 내가 나이가 조금 들면서 바뀐 부분이 이런 부분인 것 같다. 아무리 생각과 스타일이 달라도 그 사람과 연결되는 다리(Bridge)를 없애서는 안 되는 거다. 차이보다는 같은 점에 더 주목한다면 우리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아침 운동을 하려면 이제 자야겠다. 다음에는 욱이 얘기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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