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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Jan 01. 2023

영웅이라기 보다는 순교자라고 부르고 싶다

2023 명필름 시네클럽 - 영웅

2023년에도 명필름아트센터의 시네클럽에 가입했다. 왜? 가입하면 명필름이 선정한 좋은 영화들을 보게 되니까. 내게 영화를 보는 시간은 무언가를 생각해보게 하며, 웃거나 울거나 하면서 감정을 정화시키는 시간이다. 요즘은 아내와 함께 본다. 의미 있는 시간 (Quality time)이다. 


새해 첫 영화는 윤제균 감독의 뮤지컬 영화 <영웅>이다.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 원작인 영화이지만 뮤지컬을 안 본 나로서는 새로웠다. 새해의 시작을 안중근과 함께 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많았다. 명필름아트센터에서는 보기 드물게 거의 만석이 되었다. 명필름아트센터 입장에서는 관객들이 더 늘어야겠지만, 나로서는 내가 아끼는 나만의(?) 아지트 극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썩 달갑지만은 않다. 내 욕심이다.


영화는 안중근이 고향인 황해도 진남포를 떠나 러시아 연추 등 만주에 머물면서 무장독립투쟁을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신이 가진 양심과 원칙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풀어주었던 안중근은 그로 인해 부대가 거의 괴멸하는 피해를 입고 괴로워한다. 그 후 다시 뭉친 옛 전우들은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계획을 알게 되고 그를 죽이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안중근의 집안은 풍요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있고 아이가 셋인 그는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다. 왜 그런 그가 목숨을 건 싸움에 뛰어든 것일까. 나는 이것이 먼저 궁금했다. 작품에서 이를 다루지는 않는다. 조선독립이라는 대의명분, 나라를 뺏긴 울분 이런 것일까. 


잠시 시간을 앞으로 돌려서 유신정권과 전두환 정권 때 자신의 모든 기득권과 때론 목숨을 바쳐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한 그 많은 대학생들을 생각해 보자. 서울대, 연고대를 비롯해서 그들은 모두 다니던 대학 잘 마치면 당시 체제 하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잘못된 세상에 맞서 싸웠다. 


물론 더 엄혹한 시대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안중근의 의거와 민주화 운동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분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던졌다는 것이다. 안중근은 일제라는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자기 가족만 잘 살자고 하는 것도 용납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과 지내면서도 그의 가슴은 늘 한구석이 눌려서 불편했을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내 울음보를 터뜨린 장면은 안중근의 어머니가 옥중의 안중근에게 보낸 편지를 읽는 장면이었다. 

'내 사랑하는 아들 도마' 

편지 서두의 이 글귀에서부터 난 울었다. 우리 어머니도 나를 부를 때 내 천주교 세례명을 쓰신다. 아들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어미의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하지만 안중근의 어머니는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다.     


요즘 같이 영화 보면 아내는 울지 않는데 나만 펑펑 우는 일이 잦다. 중년 아저씨의 호르몬 변화 일수도 있지만 난 감수성이 풍부해서라고 믿고 싶다. 새해 첫날 나를 펑펑 울게 한 영화 영웅. 안중근 같은 영웅의 삶과 나 같은 소시민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신념대로 산다는 것은 소시민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막대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영웅의 삶은 코앞의 이익에 목숨을 거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듦으로써 소시민의 삶에 영향을 준다.


안중근의 죽음은 신념을 위해 죽은 "순교"이다. 하지만 일제와 유착했던 당시 조선천주교의 최고 책임자 뮈텔주교는 안중근을 살인행위자로 단죄하면서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고 부인한다. 많은 세월이 지나 1979년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비로소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 기념미사를 열고 1986년에는 안중근 순국 76주년 추모미사를 집전한다. 그리고 1993년 고 김수환 추기경이 드디어 안중근 의사를 위한 첫 공식 추모미사를 집전한다. 그 미사에서 김 추기경은 일제치하 교회가 안중근의 의거에 대한 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고 고백함으로써 안중근은 교회 안에서 복권되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의 천주교회의 친일에 대해서는 아직 천주교 내부의 "고해성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순교자 안중근, 그의 짧지만 불꽃같았던 삶이 2023년을 시작하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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