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의 완도살이 1 - 햇님팥죽
완도살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완도의 완자가 '빙그레 웃을 완'자인지 와서야 알았다. 빙그레 웃으며 반겨주는 섬 완도. 하지만 나 같은 외지인에게 보여주는 완도의 첫인상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가게나 식당에서도 내가 기대하는(또는 익숙해진) 친절한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외지인에게는 텃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한 달이 되어가는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다. 처음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고 낯설어할 뿐 속마음은 따듯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팥죽을 좋아한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단팥빵, 양갱, 팥빙수 등 팥이 들어가는 음식을 다 좋아한다. 요즘 일로 피곤하고 마음도 좀 힘들어서 팥죽이 먹고 싶었다. 퇴근하고 걸어서 팥죽집을 찾아갔다. 완도 현지주민인 동료가 소개해준 이 팥죽집의 이름은 햇님팥죽이다. 이름도 좋다, 햇님팥죽이라니. 전화로 팥죽 한 그릇을 포장주문했다. 혼자 먹기도 뭐해서 집에 가져가서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가게에 들어가 보니 시간이 늦어서인지 주인 할머니만 혼자 계시고 손님이 아무도 없다. 나는 포장하지 않고 먹고 가기로 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끈한 팥죽이 나왔다. 허기진 나는 후후 불어가며 팥죽을 비웠다. 손님이라고는 나 혼자 뿐인 가게에서 늦은 시간 먹는 팥죽에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팥죽 속에는 국수도 들어있어서 실은 팥칼국수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 같았다. 맛있고 양도 많다.
주인할머니는 나 때문에 퇴근도 못하고 기다리신 것이었다. 옆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시는 주인 할머니와 몇 마디 얘기도 나누었다. 할머니는 트로트 경연 방송을 보시고 계셨는데 나오는 가수들에 대해 한 마디씩 하셨다. 혼자 식당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바쁜 점심때에는 할아버지가 나와서 도와주시는데 다음 달부터는 할아버지가 일을 하시게 되어(실은 할머니가 일하라고 내보냈다고 하셨다^^) 알바생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알바생 할 젊은 학생들이 있냐고 물었더니, 여기는 젊은 아그들은 안되고 나이가 좀 든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주로 연세 드신 손님들이 많아서라고 하셨다.
주인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며 먹은 '햇님'팥죽 한 그릇에 위로받는 완도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