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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Jan 05. 2023

멸치와 장어 이야기

라떼의 완도살이 2 - 멸치와 장어잡이 어선의 풍경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항구에 나가보면 불을 대낮같이 켜놓고 작업하는 어선들이 있다. 어제저녁에 항구 부근을 걷다가 환한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무언가 뜰채로 퍼다가 얇은 플라스틱 상자에 넣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배 아래쪽에 넣어 삶는 모습이 보였다. 

불을 환하게 밝히고 멸치 삶는 작업을 하는 어선


말로만 듣던 멸치로구나. 


어릴 적에 아버지로부터 들은 얘기로도 멸치는 잡은 후 배 안에서 삶는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뜰채 안에서 파닥이는 멸치가 보이고 그걸 한 분이 건져내서 플라스틱 판에 올려놓으면 맞은편의 한 분이 멸치를 얇게 펴고 그 위에 새로운 플라스틱 판을 올린다. 멸치판이 어느 정도 높이로 쌓이면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갑판 아래의 찌는 곳으로 내려보낸다. 판에 담아 삶아낸 멸치들은 차곡차곡 쌓이고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서 트럭에 실린다.

잡아온 멸치들은 쉴 새 없이 판에 담겨 삶긴다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다. 먼바다에서 어망으로 힘들게 잡아왔을 멸치들을 또 담아서 삶고 운반하는 일은 한눈에 보기에도 힘들어 보였다. 힘들게 일하시는 걸 구경하고 사진까지 찍기가 좀 미안해서 오래 지켜볼 수는 없었고 짧은 시간 동안 눈치껏 구경을 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마른 멸치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식탁까지 오는구나 생각하니 멸치가 다르게 느껴졌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삶은 멸치들이 판에 담겨 크레인을 이용해 트럭에 실린다
건조준비가 다 된 멸치들, 한 마리 집어먹어 보았는데 짭조름하다^^


이번엔 멸치에서 크기를 좀 더 키워보자.


얼마전에 이곳 완도에도 눈이 펑펑 오던 날 아침에는 장어(흔히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잡이 어선이 잡아온 장어를 트럭에 싣는 현장을 보게 되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밤새 힘들게 조업했을 이들은 모두 가슴까지 오는 장화속에 두툼한 옷들을 껴입고 있었다. 그들중에는 우즈벡이나 카자흐스탄에서 온 걸로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더러 보였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아침, 이들은 만선의 기쁨으로 항구로 돌아왔으리라. 조업이 무사히 끝났으니 이분들도 흰 눈 내리는 날의 풍경을 즐기셨기를 바란다. 


내가 멸치잡이와 장어잡이 어선에서 본 것은 멸치나 장어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고된 어선일을 생업으로 자식들을 키워냈을 선원들과 낯선 타국까지 와서 힘든 일을 해내고 고국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줄 외국인 노동자 선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른멸치를 먹고 아나고회를 먹으리라. 


앞으로 멸치와 장어를 보면 그들의 노동이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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