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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Dec 26. 2021

류승완은 액션을 버릴 수 없었다

실화의 프리미엄을 자발적으로 거절한 영화 <모가디슈>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알려진 영화 <모가디슈>를 보았다. 나를 포함한 보통의 관객들은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에 더 몰입하고 공감하게 되므로 감독으로서 이런 '실화 프리미엄'은 흥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앞이나 뒤에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자막은 나오지 않았다. 최소한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정도의 자막은 나올 거라는 내 예상도 틀렸다. 


그걸 보며 든 첫 번째 생각은 '아 류승완은 실화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구나'였다. 그제야 왜 그렇게 자동차로 탈출하는 액션신이 과했는가 이해가 갔다. 두 번째로 든 생각은, '그럼 실화는 어땠을까?'였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소말리아 탈출 편>을 찾아서 보았다. 와, 실화 자체가 그냥 영화였다 (굳이 한마디 덧붙이자면 꼬꼬무는 탐사보도 프로 같은 세밀함에 이야기의 재미를 입힌 정말 좋은 프로이다). 실화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고 여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보태서 인물을 설정하고 흥미를 더하면 그냥 감동 실화 영화가 한 편 나올 수 있는 보석 같은 원재료였다. 


하지만 류승완은 류승완의 길을 갔다. 그에게 액션은 버릴 수 없는 것이고 영화감독으로서의 그의 시작과 현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상업영화 감독이자 액션영화 감독인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또한 액션 중간중간에 배치한 그의 메시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장기 독재정권의 정부군이 시위대를 무자비한 폭력으로 진압하고 발표까지 하는 상황에서 유엔에서의 한 표를 얻기 위해 독재정권을 묵인하고 후원해온 한국대사관이 담 밖으로 내보내는, '한국 정부는 소말리아의 발전과 번영을 도와주기 위해 와 있다'는 내용의 방송은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광주 민주화 항쟁과 미국을 떠올리게 되었다. 또한 안기부 직원과 북한 보위부 직원의 대립을 통해 남북의 적대적인 대치라는 엄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이를, 두 대사간의 인도적인, 그리고 다분히 한민족 정서에 기반한 협력으로 녹여내는 영화적 장치는 잘 작동되었다. 이는 또한 허준호, 김윤석, 조인성, 구교환,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정만식의 명연기에 힘입어 자연스러웠다.

네 명의 배우들은 명연기를 펼쳐 보인다


하지만 나에게, 실화 자체가 주는 감동을 많이 저감 시킨 것이 바로 과한 액션이었다. 책과 모래주머니를 차에 둘러서 총알을 막는다는 설정은 좋았다. 하지만 반군 또는 무장강도, 그리고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자동화기 세례를 네대의 차량에 받으면서도 단 한 명의 희생자밖에 발생하지 않고 이탈리아 대사관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물론 실화에서도 차량에 총격을 받았고 차를 운전하던 북한 대사관 직원이 총에 맞아 숨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에 묘사된 네대의 차량은 거의 불사신처럼 총에 맞으며 거리를 질주한다. 여기서 좀 과함을 걷어내고 현실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자동화기 세례를 받으며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 액션 장면


실제 이야기에서는 원래 한국 대사관 직원이 운전하려던 웨건 차량을 북한 무전수가 자신의 가족이 탔으니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위험을 무릅썼고 총에 맞은 상황에서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끝내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이 감동적인 이야기도 감독은 과감히 걷어내고 운전하던 북한 직원이 도착해보니 죽어 있었다는 건조한 이야기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류승완은 편하게 갈 수 있는 감동 서사를 자발적으로 거부했다.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뭉클한 감동을 줄 수 있는 실화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액션 영화를 한편 만든 것이다. 원작의 서사를 과장해서라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 감독의 마음일 텐데, 그는 오히려 실화의 감동보다는 액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장면에서 남북이 끝내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모습으로 마무리한 것과, 같이 지내는 동안에 교류하는 인간적인 에피소드들을 최소화한 것도 신파적인 감동에 매몰되기를 거부하는 감독의 의지로 읽힌다. 

이들은 다시 남과 북이라는 현실로 돌아간다


액션에 힘만 조금 더 뺐으면, 더 감동적이고 메시지가 잘 전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빼는 감동을 거부하고 이 영화가 본질적으로 액션 영화임을 천명한 류승완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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