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변명
12년만에 백수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스러워 하면서도 일을 하지 않는건 부럽다며 말하지만 , 인간이란 막상 시간이 많아지면 그 시간을 주체적으로 쓰기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여유가 생겼지만 무기력증, 고립감이 밀려오면서, 12년 만에 다시 우울의 기운을 느끼고 있다.
사람은 본래 매우 수동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자유‘라는 것은 아주 우수한 인간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는 12년 전의 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직장에 머무르는 시간은 잠시 외로움을 잊게 해주고 불안을 덜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임시봉합‘이었다.
근복적인 외로움은 해결되지 않았고, 직장은 오히려 눈앞의 일을 급하게 처리하느라 더 큰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확실한 것은, 나는 예전보다 내 마음의 변화에 조금 더 빨리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규 때부터 어딘가 이 직장과 나는 맞지 않는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단순히 일이 힘들다거나 인간관계가 힘들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을 괴롭히는 직장상사나 자기 일을 조금이라도 덜 하려고 하는 얄미운 직장동료는 존재하는 법이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묵묵히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다른 방식, 이를테면 술을 마시거나 돈을 들여 여행을 가거나 하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으나 그것 또한 일종의 임시봉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 한 켠에서는 더 이상 이렇게 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십 년 후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다가 결국엔 닳고 닳아 내가 정말 싫어하는 선배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는 부서의 팀장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혹은 겨우 앉았다가 정년퇴직을 맞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러던 어느날, 함께 일하던 행정사무원 한 분이 교육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불현듯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던 상담교육대학원을 떠올렸다. ‘일단 발만 담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늦은 나이에 교대원 입시준비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3년 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내가 사는 지역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학과에 합격했다.
- 교육대학원 도전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서!
교육대학원은 특수 대학원이라 직장과 병행이 가능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어렵게 된 공무원을 관두고 공부만 하겠다는 나를 만류하였지만 나는 시험의 합격유무와는 상관없이 더 이상 일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럴 시간에 밑 빠진 독 같은 머리에 한 방울이라도 더 붓자는 마음가짐으로 사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엎질러진 물이고 쏘아 놓은 화살이다. 인생에 2막을 열기에는 모든 것이 살짝 귀찮은 40대 후반에 나는 오히려 가장 큰일을 저지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