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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7

by 세준




비가 내린다


주춤주춤 머리 위를 두드리다


끝내 위로 쏟아지고 만다


왠지 오늘은 비가 맞고 싶어서 그대로 걸어간다.


가방에 있는 우산은 꺼내지도 않은 채


우산을 가져오지 못 한 사람처럼 걷는다


비가 오는데도 천천히 걷는 이유.


지금 이 느낌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싶어


오늘은 아프고 싶다


오늘은 아팠으면 좋겠다


열이라도 나서 정신없는 세상을 마주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무엇보다 간절한 듯하다


감기약은 먹지 않을 거야


지금 내 증상을 보니


한동안은 낫질 않을 것 같아서




나는 너를 사랑했던 걸까?


너는 나를 사랑했던 걸까?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


이젠 다시 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이렇게나 힘들 줄 몰랐었는데


그래도 잘 말했어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한 나였으니까


그냥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거였으면 좋겠어


그럼 이별 후에도 전혀 아프지 않을 테니까


난 끝까지 니 걱정이야


청승같이 비를 맞으면서도 니 걱정이야


우린 이별했지만


나는 아직 네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 같아


비가 올 때마다 너와 이별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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