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이 무너져 슬픔이 될 때.
아무 말을 하고 싶지 않다. 이왕이면 혼자인 게 더 좋다. 혼자이고 싶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반대로 누군가는 나를 찾았으면 할 때를 생각해서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는 데,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때를 위해서는 가족이 없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마주하게 된 기분이다.
회사일에 치여 안 좋은 생각의 흐름이 반복되는 와중에, '엎친데 겹친 격'이라는 표현이 괜히 있다는 말이 다르지 않은 것처럼 가정의 일로 피곤하다. 기쁜 일을 만들기 위해 급하게 오사카 여행을 생각하지만, 이제는 기쁜 일을 만드는 것도 피로하다. 나에게 어떤 일도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간을 흘러 보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참으며 보낸 시간도 이제는 참아 보낸다는 표현보다는 잠을 자버리고 싶은 시간이 된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적합한 것 같다. 고요하게 잠을 자고 싶다. 외부의 사람은 자극이다. 기쁨도 슬픔도 그 어떤 자극도 받지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싶다.
힘듦이 슬픔으로 녹아 변하는 기분이다. 지난 2-3일간 나는 남편의 친척집에 방문을 했다. 한 번은 방문을 해야지라는 다짐을 했었지만, 그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피곤함은 입맛도 말할 맛도 모두 뺏었어 갔다. 원래는 연차를 쓴 날에 방문하고 싶었지만 시어머니의 바람대로 우리는 15일 방문으로 변경을 하였다. 그런데, 정작 당일 시어머니는 여러 이유들로 가지 않고, 우리 둘이서 친적집에 방문하게 되었다. 시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할 것이었다면 굳이 15일을 고수하여 갈 필요가 없었다. 이 날 가기 위해 나는 일을 끌어당겨했고, 갔다 와서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 이로 인해 일을 하지도 못할 정도의 심한 압박감을 느끼며 무너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 상태로 또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숨이 쉬어지지가 않는다. 회사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주 상사가 휴가다. 어떤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출근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버틸 수 있을까. 지난 금요일 사장은 디자인한 것을 뽑아 오라고 하고, 디자인이 촌스럽다고 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촌스럽다는 평가보다는 점점 개입이 많아지네라는 느낌이 더 크게 와닿았다. 업계에 이 회사 빌런이라고 소문이 나 있던 사람이 퇴사를 하고 나서, 그 회사는 그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새로운 인력을 충원한 것이 아니라 오너 패밀리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 방향성에서 나는 미래를 찾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 더 좋은 선택지가 없음에 버티고 있다. 나만의 퇴사기준을 꼽씹어 버티고 싶다.
그런데, 가정에서도 나의 돈과 시간이 뺏겼다는 생각이 스치자. 내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 원망의 대상으로 남편을 향해지는 마음을 마주하게 되어, 지금 나는 문을 닫고 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남편이 툭 건네는 말에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남편 부모의 일방적인 약속 취소, 그 남편 친척들에게 방문하여 뺏긴 시간들.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는지, 그들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썼는 지도 알지만,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받아줄 에너지는 없다.
굳이 잡은 약속일정에 나는 생리가 터지고, 생리통 약을 구입하러 간 약사가 충혈된 눈을 보고 약을 권할 정도였으니깐 말이다. 나의 정신과 신체 에너지의 4일 치를 앞당겨 썼고, 그 4일은 휴가 전이라 업무가 몰린 전 주라는 점에서 나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벗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