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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May 04. 2023

제주도 한달살이 와서 하루종일 집에 있다.

제주도 한달살이 D+9 / 늦잠 그리고 호우경보, 내향인스럽게 집에 있다

눈을 떠 보니 10시다. 이런 시간은 처음이다. 


어제 비를 맞으면서 긴장을 하고 걸어 다닌 탓일까 집에 있을 때도 잘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 대이다. 보통 나의 기상 시간은 8시~9시였는데 당황스럽다. 머리가 살짝 어지럽다. 이렇게 늦게 일어날 때면 머리가 어지럽곤 하다. 비까지와 내 두통을 더 한다.


일단 커피를 내리면서 일상을 시작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때 못갱긴 원두를 솎아내고 그 원두가 스테인에 부딪쳐 뎅뎅거리며 울리는 순간이다. 그리고 순간 원두가 갈릴때 나는 향을 맡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늦잠을 자고 식사 시간이 예매해져도 기계적으로 일단 하고 보는 행동이다. 기상예보는 어제부터 해서 4일간 비가 올 예정이라고 하였다. 오늘은 비가 오는 것과 상관없이 빨래를 하고 나서 늦은 외출을 할 생각이다.


빨래를 널어놓고,  외출 후 마르지 않은 빨래는 건조기로 돌릴 생각이었다. 건조기는 정말 유용한 가전제품인 것 같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다시 한번 중요성을 느낀다.  뭔가 건조기를 만나고 빨래가 즐거워 졌다?  이런 기분이 든다. 물론 검색해보니  세탁기의 건조기능을 쓸 때는 전기세가 비싸다고 하지만 비가 오는 날 딱 좋다.


그리고 비 오는 날에 어울리는 점심으로  친구가 비상식량으로 사다 놓고 간 라면을 먹을 예정이다. 역시 비 오는 날의 라면이라, 원래도 라면을 좋아하시만 제주도 숙소에서 먹는 라면은 또 다른 일상에서의 꿀맛이다. 인덕션 화구를 자세히 보니 크기차이가 있었다. 이때까지 조리기구에 비해서 작은 화구를 이용했던 것같다는 인지와 함께 큰화구를 써본다. 큰 화구를 쓰니 냄비가 덜 흔들린다. 큰 냄비를 작은 인덕션에 올리고 물을 끓이면 냄비가 요동치며 흔들린다. 인덕션을 써본 적 없던 나는 원래 이런 건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런데 이 큰 화구도 인덕션은  처음이라 그런가 뭔가 익숙치 않아 답답함이 있지만 라면을 끓여본다. 밥도 먹고 싶은 생각에 라면을 반만 넣고, 끓인다.  엄마가 해준 김치는 아니지만 다행스럽게도 내 입맛에 맞는다. 때때로 음식집에서 나오는 맛없는 김치는 안 먹는 만 못하다.


김치통에는 나름 파, 무가 들어간 양념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큰 배추가 안들어가 있고 김치가 아주 작게 잘라져 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나중에 조금 남았을 때는 이 김치 국물에  김치 볶음밥까지 할 생각을 하니 군침이 돈다. 삼시 새끼 요리해야하는 게 답답하면서도 나름 즐거운 것 같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화장을 곱게 하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오늘 갈 곳은 아르떼 뮤지엄 검색을 해보았다. 어제의 고생이 있어서 자세히 보니  생각했 던 것과 약간  다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물쭈물하던 나는 발길을 돌려 집안으로 와서 편히 경로를 다시 확인하였다.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걸어야 하는 시간이 더 긴 그런 버스 일정. 어제처럼 한참을 걸어갈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심지어 오늘은 운동화가 다 마르지 못해서 맨발에 통굽 샌들이다. 이 신발로는 그 거리를 걷지 못한다.


아르떼 뮤지엄을 갈 생각이었다면, 아침부터 움직였거나, 발이 편한 신발이 있어야 하는  상황이나 나는 그렇지 못하였다. 곱게 화장한 것이  아까워 다른 갈만한 곳을 알아보았다. 비오는 날 오후에  적당히 들린 만한 곳으로 잡지서점과 제주도의 교보문고라는 한라서점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다시 문단속을 하고 내려왔다. 공동현관을 여는 순간.  내가 생각한 이상의 비였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아 오늘은 나가면 안 되는 날이구나. 그래서 핸드폰을 보니 오늘 제주도에는  호우경보가 떨어졌다. 호우주의보보다 한 단계 더 위인 호우경보다. 아쉬운 마음에 숙소로 올라왔다. 그리고 30분 후 알람을 다시 맞추었다. 3시 30분이다. 뭔가 급하게 짠 일정들을 자꾸 취소되어 초조해지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기로 했다. 그리고는 오늘 숙소에 있으면 제주도 와서  하려고 했던 것들을 조금씩 진행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 와서 하루도 안 나간 적이 없다. 나로서는 엄청난 것이다. 서울 집에 있을 때는 아무 일이 없다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편이었다. 여행까지는 아니지만  특별한 이 일상을 더 누리고 싶어서 한 달짜리 살림을 채우느라 조금씩 왔다 갔다 했더니 9일째가 되는 오늘까지 매일같이 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하루만큼은 집에 있어도  괜찮겠다 생각을 했다. 집안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준비 중인 독립출판물의 교정을 의뢰하고, 동영상도 편집하고, 넥플릭스도 시청하면서  일상을 보내었다.

저녁 식사는 내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 노형점에서 처음 오픈하여 점점 확장한 그랜마스라는 곳에서 페퍼로니 피자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방문해보고 싶은 음식집이었는데, 나갈 엄두가 안나 배민에 피자를 검색하고  좀 뒤지니 뭔가 낯 있은 지점이 있어서 살펴보니 내가 방문하고 싶어 저장해 두었던  곳이다. 재빠르게 메뉴를 스캔 후 내가 좋아하는 페퍼로니 피자와 배달비가 드는 것이  아까워서 샐러드를 하나 주문시켜 본다. 혼자서 먹기에는 많은 양이지만 나에게는 냉장고가 있다. 오면 바로 소분하여 냉장고에 넣을 예정이다.


두근두근 숙소에서 시키는 배달음식이라니..! 더욱이 내가 방문하려고 했던 곳이니 오늘하루 이 피자가 나를 보상해 주는 기분이 든다. 작은 사이즈의 피자지만 워낙에 좋아하는 제품이어서 어찌보면 평가 기준이 낮을 수도 있고, 그와중에 맛있는 집을 발견하는 집들도 있는데, 이 집은 후자였다. 페퍼로니 빵이 무척이나 맛있어서 바로 피자의 3/4를 먹어버렸다.  원래는 그래도  3끼 정도는 나누어서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맛있어서 생각보다 자꾸 음식이 들어갔다. 피자도  바로 소분했었더라면 과식을 피했을까 생각이 들지만 이미 내 배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일 아침에도 피자에다가 남은 샐러드를 먹을 생각을 하니 합리적인 소비를 한 것 같아 뿌듯함이 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랬었다. 피자를 남기면서도 내일도 이 피자를 먹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오늘은 이렇게 내향인스럽게  집에서 주문 음식도 시켜 먹고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한 것도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에는 일어나서 꼭 아르떼 뮤지엄을 재도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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