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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OOT May 13. 2023

비가 안 와도, 오늘은 숙소에 머물게. 쉼에 대한 관대

제주도 한 달 살기 D+18 / 한달살이의 장점은 쉼에 대한 관대한 마음


오늘로써 제주도 한 달 살기 중 숙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3번째 날이다. 2번째 쉬던 날은 몸상태가 안 좋아서 쉬었던 것과는 이번 쉼은 조금 다르다. 몸이 안 좋았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피곤함이 쌓인 것이다. 여기서는 매일매일 놀러 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 일상적인 것이어서 여행도 쉼이지만, 그보다도 쉼인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어 진다. 9-6시 아니, 때때로 그 이상을 더 일해왔던 내가 그 시간만큼 하루하루를 놀기로 채우고 있다. 놀기에는 생각보다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5일을 연속해서 나가서 놀았던 것이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놀았던 사람인가?

이때까지 못 놀았던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 조금 지친 날에도, 그리고 운이 된다면 조금 더 먼 곳들도 가곤 했다.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도 1시간 반 혹은 2시간을 대중교통을 걸려 간다면 볼 곳들은 참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다는 느낌을 받으며, 굳이 찾아가지 않았던 곳들이 많다. 그 시간을 들여서 갈 만큼의 강력한 동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라는 지역적 특색에 맞추어 나는 이 시간이 들이더라도, 찾아가고 있다. 한 곳에 숙소를 잡다 보니 아무래도 지역적으로 멀리 돌아다니는 것에는 힘듦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지역을 바꿀 때마다 짐을 싸고 푸는 것 또한 일이다. 아마 숙소를 자주 옮기게 된다면, 숙소에서 해 먹고 남은 음식을 저장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생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숙소에 머무는 것이  본인의 체력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장점!


2주 정도 한 숙소에 머무르면서 이제는 유명한 곳이 아닌 이 동네 사람들이 알만한 조금은 자세히 보아야지 알만한 곳들을 알게 된다. 이 또한 한 숙소에 머무는 재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속 시원하게  라리 비가 와서 내가 집에 머무는 것에 대한 효율성이 올라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비는 생각처럼 오지 않았다. 어제만 하여도 손가락으로 남은 날짜를 헤아리며 나에게 며칠이 남았는 지를 계산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하루 집에서 하루를 보내었다.  그래, 집을 싸고 풀고 그리고 날씨에 따라서 쉬고, 어떤 날은 그냥 쉬고 싶으면 쉬어도 되는 게 제주도 한달살이의 묘미지. 따지면 양념반 후라이드반처럼 일상과 여행이 섞인 한 달 살이다. 한달살이를 하길 정말 잘했다. 만약에 보름 살이를 했다면 많이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나직이 일어난 시간,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에 어제 사놓은 내가 좋아하는 생크린 단팥방에 직접 내린 아메리카노를 먹는다. 기분 좋게 늘어져서 지금까지 올린 인스타그램을 본다. 제주도 계정도 아닌데, 계정을 새로 팠걸 그랬나? 약간 후회가 될 정도로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다. 원래는 데스크나 일상 아이템을 올리는 공간인데, 뭐 지금은 이게 나의 일상이니깐 하면서 나름의 합리화를 하며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따라서 내일은 어떤 곳을 가는 게 더 좋을까 약간의 검색을 한 후, 밀린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가서 이때까지 올린 브런치 글들을 올리고 프로젝트소식을 전하고 있다.


제주도라는 특성에 있으면서 내가 자주 쓰는 SNS이 바뀌었다. 원래는  네이버 블로그에 주말일기, 독서 기록을 주로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인스타그램에 제주도 방문록처럼 업로드를 하고 또 브런치에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나는 브런치에  과거 4번 정도 작가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매번 떨어지고, 그래 혹시 나 하는 마음에 이번 제주도 방문을 하기 전에 신청을 하였는데 작가승인을 받은 것이다. 기뻤다. 뭔가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콘텐츠를 인정한다는 작은 성취감이 들었다.



물론, 일기를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되지 않더라도, 원래 나의 아지트인 블로그에 꾸준히 업로드를 할 예정이었다. 기존에 있는 이웃들도 있어서 소통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브런치를 선택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브런치가 조금 더 감성위주의 글에 적합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새로운 플랫폼에서 나의 글을 어떤 반응일까 이런 막연한 궁금증도 있어 글을 연재해보고 싶었다. 기존에 저장했던 글들에 사진 붙여 넣어보고, 소제목도 넣고 글꾸밈을 더 하고 신청했다. 그리고 어떤 글을 올릴 수 있냐는 질문에 이번에는 제주도 한달살이를 가니, 매일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일기를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작성하게 된다. 매일 쓰는 일기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막연하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의심을 했었는 데 사람이란 게  은근히 쓰는 맛이라는 붙는 것 같다. 아직까지는 18일 차 무리 없이 잘 쓰고 있다. 오히려 너무 피곤한 날에는  잠자기 전에 쓰려고 하다 보니 짧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또한 그 순간 이랬거니 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제주도의 하루를 내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고 내 안의 말주머니들을 쏟아 붙는 공간으로는 이 일기만 한 곳이 없는 것 같다. 일기 찬양꾼이 될 것 같다. 그렇게 오랜만에 블로그를 살피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어 내가 좋아하는 신라면을 끓여 먹곤 다시 장을 보러 간다. 요즘 느끼는 바가 있다면 끝없는 생필품과의 전쟁 같다. 특히나 제주도 한달살이라는 특성상 남는 물건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소량식 구입하다 보니 조금 더 자주 마트를 찾아가게 되는 것 같다. 이럴 때 문득문득 엄마얼굴이 생각난다.  엄마가 그래서 그랬구나.


휴지는 왜 이리 잘 떨어지는지. 물티슈는 왜 받아오는지 얼음은 어째 얼리는 게 일이 된 것 같은 기분. 조금은 엄마를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이 기분을 잘 가지고 가서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는 좋은 딸이 되고 싶다. 물론, 독립을 해서 나가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조금 더 온전한 휴식을 전해주는 것이겠지만.. 아, 갑자기 엄마 얼굴이 생각나네. 오늘도 통화를 했었는데, 연락을 해봐야겠네 싶은데 10:33분 엄마는 지금쯤 잠을 자고 있을 것 같다.


장을 보다, 가격이 안 보이는 사과 2개가 끽해야 얼마를 하겠어했는데 9천 원을 보고 이것이 진정 황금사과구나 라는 생각에 치솟는 물가에 밥벌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상상 속에나 가능한 것인가? 싶다가도 빠르게 접어버린다.  물, 사과, 과자, 육개장 이렇게 4개를 샀는데 왜 이리 무거운지. 엄마들은 진짜 철인인 것 같다. 후, 집에 와서 지친 마음에 일단 소파에 누워 있다가 아까 사 온 황금 사과를 먹어본다. 이런.. 황금사과맛이 아니다.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그렇게 사과를 먹으면서 책을 펼친다. 이 책도 여행 중 카페에서 읽으려고 사 왔지만, 아니다. 새로운 곳의 경관에 감탄하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먼 곳을 이동하는 데 책은 짐이 될 뿐이었다. 그래서 정작 책을 읽지 못해서 잠깐 읽어본다. 쳇, 이 책도 사실 가져오기 전부터 재미있지는 않은데 일단 가져왔는데 후회가 된다.


3시가 살짝 넘어서, 쓰레기들을 분리배출한다. 제주도는 자연경관으로 관광을 하는 곳인 만큼 여기저기서 친환경을 신경 쓰는 게 느껴진다. 이렇게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곳곳에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오늘은 토요일, 토요일에 맞는 쓰레기를 버리고 비 오는 날 부서진 우산을 천과 철을 분리하여 분리 배출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린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열리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에서 나는 코를 막는다. 윽, 엄마가 왜 한 수저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라는 지 알 것 같다. 역시 사람은 혼자 살아봐야지 엄마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저녁으로는 여기서 점찍어 놓은 피자집에서 주문을 했다. 피자는 먹고 싶은데, 매장에서 남은 피자는 싸와달라고 하기가 그래서 집에서 먹을 때는 피자를 주문하고 남은 것을 보관하여 아침으로 또 먹는다. 그러니 배달비가 붙는 것을 너무 아깝게 생각하지 않도록.. 합리화를 하며 주문을 한다. 저녁을 먹으면서 넥플리스로 영화를 본다. 참, 인간은 음식을 먹으면서 살인추리영화를 본다. 인간의 시체가 나오는 영화인데, 음식을 먹는다. 문득 엉? 나 지금 되게 비인간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뇌는 현실과 비현실을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아는 건지, 아니면 자연스럽게 비인간적으로 점점 현대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오늘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으니 별의별 생각을 다 하는 것 같다. 어제는 왜 파도는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나. 이런 식사를 다하고 샤워를 하고 나와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는 데,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 모든 것에는 그에 맞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여행이지만 쉬는 것이 나에게 행복이었던 그런 하루였던 것이다. 나는 하루가 마무리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오늘도 무사히 마친 하루일수록 어둠이 참 포근하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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